현장칼럼
[현장칼럼] 베스트셀러로 본 ‘삼성’
뉴스종합| 2012-05-17 08:34
“선배, ‘삼성가의 사도세자 이맹희’책이 교보문고에 없대요. 누가 다 사간 거 아닐까요?”

얼마전 후배 기자가 이 책이 출간된지 하루만에 광화문 교보문고 매대에서 ‘사라졌다’며, 조심스럽게 책이 알려지길 꺼리는 측의 사재기(?)의혹을 제기했다. 후배의 ‘혹시나’ 의혹에 ‘그럴리가’로 응수한 뒤, 해당 출판사 사장에게 물어본 결과는 싱거웠다. 요즘 책이 워낙 안 나가다보니 많이 찍지도 않고 대형서점일지라도 책 주문량이 몇십부 정도에 불과해 금세 바닥난 모양이라는 얘기었다.

삼성가 장남 이맹희씨의 재산소송으로 세간의 시선이 집중된 터라 그런지 이달 들어 부쩍 삼성 관련 책이 늘었다. 몇 권은 기자 출신이 쓴 책이라 글이 매끄럽고 정리가 잘 돼 있어 ‘삼성 사태’의 전후 맥락이 궁금한 이라면 집어들 만 하다.

지난 30년간 삼성가 오너들은 종종 베스트셀러의 주인공이었다.

삼성 베스트셀러 목록의 첫 책을 꼽자면 1986년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중앙일보에서 펴낸 자서전 ‘호암자전(湖巖自傳)’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자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1986년 4월25일 발간된 양장본 5판이다. 이 책은 86년 베스트셀러를 장식했다.

25년동안 잠잠했던 이 책이 되살아난 건 최근 삼성가 상속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이병철 회장이 타계하기 1년반 전에 쓴 이 책에 후계자 승계 문제 등을 언급한 내용이 들어있다는게 알려지면서 책을 찾는 이들이 폭주하며 품귀현상을 빚은 것이다. 이 책은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한 때 일반 양장본이 40만원에 거래됐으며, VIP용 특장본은 120만원을 호가했다.

최근 베스트셀러에 오른 차동엽 신부의 ‘잊혀진 질문’도 이병철 회장과 관련이 있다. 이 회장이 죽음을 예감한 듯 종이에 써내려간 신의 존재, 인간의 고뇌 등에 대한 질문을 바탕으로 차 신부가 답변형식으로 쓴 책이다.

삼성가 책 가운데 또 하나의 히트작은 1993년 이맹희씨가 출판사 청산에서 펴낸 ‘묻어둔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이야기’다. 후계승계에서 밀려난 전후 사정과 삼성그룹, 개인사 등을 담은 ‘묻어둔 이야기’는 비운의 황태자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000년대는 그야말로 이건희 회장의 시대였다.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시장에 우뚝서면서 ‘이건희 개혁 10년’ 등 이 회장의 창조적 경영에 주목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후 조용한 시절을 지나 2010년 또 한방이 터졌다. 2007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삼성 비리’고발의 주인공, 김용철 변호사가 펴낸 ‘삼성을 생각하다’가 베스트셀러에 올라 오래 갔다.

최근엔 후계자 승계에 관심이 쏠리면서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이재용, 이부진 사장 등 3세 경영인과 관련한 책들이 슬슬 나오고 있다. 그 중 인기를 모으고 있는 책은 ‘이부진 스타일’.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가 되면서 이 책은 현재 다른 삼성관련 책을 압도할 만큼 판매량에서 독주하고 있다.

책은 세상의 관심사와 늘 함께 간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내가 삼성을 창업하고 발전시켜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삼성이 나 개인의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이 삼성에 혹독한 것도 이런 뜻이겠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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