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체·대기업 콘텐츠사업 강화
턱없이 부족한 개발자 모시기 전쟁
중소 보안업체는 인력 이탈 골머리
지난해까지 한 중소 보안업체에서 보안솔루션과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담당하던 H씨. 그는 올 초 연봉 2배를 더 받고 게임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그가 맡은 업무는 스마트폰 게임 관련 개인정보 관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그러나 3개월도 안 돼 대기업에서 이직 제안을 받았다. 이 기업이 콘텐츠 사업을 강화하면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대거 모집하는 중이었던 것. 역시 연봉은 배 가까이 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H씨는 현 직장에서 맡은 프로젝트만 끝나면 미련 없이 회사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콘텐츠를 만드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더욱 ‘귀한 몸’이 되고 있다. 스마트기기들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동시에 확대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이에 개발자들의 이직이 예전보다 빈번해지는 가운데, 특히 최근 들어 업종의 벽을 넘나드는 이동이 잦아지고 있다. 과거 동종 업계 안에서 주로 움직였다면, 컨버전스(융합) 형태의 IT상품이 각광받으면서 덩달아 개발자들의 이직에도 영역 파괴가 나타나는 셈이다. 하지만 인력 풀이 제한돼 있어 고급 인력은 결국 상위 산업군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31일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발간한 ‘2011 소프트웨어산업 연감’에 따르면, 2010년 기준 국내 소프트웨어 인력은 16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전년도에 비해 9.2% 증가했지만 증가율은 2년 연속 감소하는 추세다. 문제는 이 인력의 60% 이상이 인프라 구축 등의 업무를 하는 시스템통합(SI)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실력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이 IT업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르면서 이들을 서로 데려가려는 경쟁이 산업군 전방위로 전개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넥슨에서 개최한 개발자 콘퍼런스 현장 모습. |
때문에 소프트웨어 개발인력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IT업계 전반에서 개발자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게임회사는 보안회사로부터, 대기업은 다시 게임회사를 통해 개발자들을 영입하고 있어 개발자들의 연쇄적 이동에 중소 업체들의 인력난이 가중되고 있다.
보안회사는 개발인력을 게임회사에 내주고 있다. 지난해 ‘메이플스토리’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서 게임회사들이 보안솔루션 확충을 위해 보안인력들을 대거 채용하기 때문이다. 보안업체 C사 대표는 “예전에는 주로 포털에서 개발인력을 데려갔는데, 요즘 들어 게임회사에서 적극적으로 끌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L사 대표도 “보안업계 연봉보다 최소 1.5배는 더 준다고 하니 게임사로 옮길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게임사들도 자사의 개발자 이탈 문제로 고심하긴 마찬가지다. 삼성 LG 등 대기업에서 지난해부터 소프트웨어 사업을 키우기로 하면서 콘텐츠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게임사들이 타깃이 됐기 때문이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스마트TVㆍ스마트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기업들이 콘텐츠 강화에 나서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실제 삼성은 전체 개발인력의 절반인 2만5000명을 소프트웨어 인력으로 두고 있는데, 앞으로 70%까지 비율을 늘릴 방침이다. 때문에 ‘보안→게임→대기업’으로의 개발자 이동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삼성 관계자는 “모든 개발인력을 국내에서만 채용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글로벌 소프트웨어 인력이 영입 대상”이라고 말했다.
<정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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