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격자 넘어 창조자 되자”
팬택도 고전끝 워크아웃 졸업
고(故) 스티브 잡스가 지난 1997년 애플에 복귀할 당시, 가전사업 진출계획을 밝히며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은 기업이 소니였다. 당시 소니는 난공불락의 ‘가전왕국’이었다. 그랬던 소니가 2011 회계연도(2011.4~2012.3)에 1조20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4년 연속 적자에, 특히 LCD TV의 부진으로 TV사업은 무려 8년 연속 적자다. 아이폰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애플은 이제 애플TV로 또 한번 세상에 충격을 줄 기세다. 애플이 ‘레전드’라 칭했던 소니는 잊히고 대신 IT를 지배한 애플은 어느새 소니가 쥐고 흔들던 가전시장까지 장악할 태세다. 글로벌 기업의 몰락을 단순히 흘려보내기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에게도 그런 사례가 무수하다.
2004년 수도권 92%, 전국 55%의 경이적인 점유율로 국민 소주로 인정받던 ‘진로’.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과 다각화로 (주)진로가 하이트맥주로 인수되는 등 그룹 계열사들이 줄줄이 인수되거나 청산됐다. ‘조이너스’라는 단일 브랜드로 출시 10년도 안 돼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며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던 나산그룹은 부동산 개발에 덜미를 잡히며 최종부도를 맞았다. 최근에는 가전유통의 왕좌 하이마트가 경영권 다툼 속에 새 주인을 찾고 있고, 잘나가던 웅진은 그룹을 살리기 위해 최고 알짜기업 웅진코웨이를 팔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
시장 대응에 늦었거나 미래사업 준비에 에러가 있어 시련을 겪었던 기업들에 ‘실패기업의 교훈’은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 이에 “후퇴는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의지로 재기를 다짐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LG전자는 독기를 품고 최정상을 향해 노크하는 대표적 사례다. 2005년 ‘초콜릿폰’ ‘샤인폰’으로 2000만대 이상의 판매량을 올렸던 LG전자. 그러나 스마트폰 트렌드로 전환하는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2010년 휴대폰 부문에서만 65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LG전자는 지난해 11월 1조원대 유상증자를 감행해 이 중 절반 이상을 휴대폰 사업에 투입하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덕분에 지난해 LG전자 무선사업본부는 영업이익 120억원을 올리며 7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특히 지난해 4분기 80만대의 LTE폰을 팔아 시장점유율 20%로 전분기 대비 무려 430% 성장하며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54년 연속 흑자’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던 초우량기업 대한전선. 한때 LS전선과 국내 전선시장을 과점하며 재계에서 ‘돈줄’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빚을 내가며 무리하게 인수ㆍ합병(M&A)에 뛰어들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현재 보유 자산을 모두 매각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올 초 인도네시아 최대 전선업체인 수카코와 전략적 제휴의향서(LOI)를 체결하며 동남아 시장 공략에 팔을 걷어붙였다. 또 지난해 영업이익 477억원을 달성, 전년 동기 대비 91%나 증가하며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토종 IT업체 팬택과 삼보컴퓨터도 재기를 향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팬택은 현대큐리텔과 SK텔레텍을 인수하며 세계 10위권 휴대폰업체로 급성장했지만 자금 압박에 결국 2007년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섰다. 이후 팬택은 재활을 향한 필사적 의지로 4년8개월 만에 워크아웃을 마쳤다. 3조원 매출에 국내 스마트폰 2위 기업으로 올라선 지금, 박병엽 부회장은 오히려 생존위기론을 강조하며 원칩 LTE폰 등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간 매출이 4조원에 달했던 삼보컴퓨터 또한 대만 등 경쟁사의 저가 공세로 수익원을 빼앗겨 2005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2008년 법정관리를 졸업한 후에도 2010년 또다시 워크아웃에 빠지며 위기가 거듭됐다. 하지만 올 들어 이마트와 손잡고 LED TV 사업에 나서고, 상반기 내 울트라북 출시를 준비하는 등 부활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과거 급속한 성장을 구가하던 시절 갖췄던 시스템만으론 재기에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앞서 선진 기술을 따라잡는 추격자(Follower)로 성장을 이뤘다면, 앞으론 모든 경영체제를 창조자(Innovator)에 맞게 전환해야 더 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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