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22세 퍼스트레이디…大權앞에 서다
뉴스종합| 2012-07-10 11:51
1974년 어머니 비운의 서거후
어린나이에 영부인 역할 수행

1988년 정계입문 대선주자성장
2007 MB에 패배뒤 5년절치부심

원칙론자·불통이미지 양면성
지지도 40%대 극복도 숙제


박근혜(60) 새누리당 대선 경선후보가 5년 만에 다시 대권 가도에 첫발을 내디뎠다. 22살에 어머니를 잃고 ‘퍼스트레이디’를 맡았던 그가 38년 만에 청와대의 주인이 되려 하는 것이다. 10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는 아버지의 ‘그늘’과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로 한 발짝 도약을 꿈꾸는 ‘광장’이자 시발점인 셈이다.

육영수 여사와 박정희 대통령이 총탄에 쓰러진 건 오래된 과거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박 후보는 여전히 ‘비운의 공주’로 남아 있다. 한국정치사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게 박 후보다.

1974년 육 여사의 영면은 대통령의 딸, 평범한 모범생이었던 박 후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는 권력투쟁의 중심부 청와대의 안주인이자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해야 했다.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들은 당시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수만볼트의 전기가 훑고 지나가는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을 정도다. 50~60대 아주머니들이 으레 “아이고~우리 공주님”하며 애틋하게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운의 공주’는 그러나 나약하지만은 않았다. 아버지가 암살당한 1979년 10월까지 6년여간을 퍼스트레이디로 아버지 곁을 지키면서 어머니의 빈자리를 차분하게 채웠다. 지금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도 그의 손을 거치며 풍파를 헤쳐 노년층과 장년층에는 ‘올 곧은 박근혜’의 이미지를 새겨 놓기도 했다.

박 후보가 이날 출마 선언문을 “어머니가 흉탄에 돌아가신 후,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빈자리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 때문이었다”로 시작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정치인 박근혜’의 길은 순탄하지는 않지만 그의 정치적 역량을 시험하는 리트머스지로도 통한다.

<조민선 기자>
/bonjo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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