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인
“10리밖서도 환하게 보였던 집”…그 속에서 호연지기를 품다
뉴스종합| 2012-07-20 11:31

부농 최학배公 장남으로 태어나
할아버지는 한학자 최두혁翁

빨래줄에 널어놓은 행주치마 끈 끊어
팽이채 만드는 데 쓰던 장난꾸러기
“버릇은 매로 가르치는 게 아니다”
조부의 보살핌 속 호방한 성정 길러
생가의 가르침에서 창업의 밑거름이…



[수원=신상윤 기자] 나무는 뿌리가 튼튼해야 크게 자라고, 건물은 기초가 튼튼해야 높이 올라갈 수 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크게 될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성정(性情)에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품고 이를 키우며 커 나간다.

SK그룹 창업자(창업회장)이자 초대회장인 담연(湛然) 최종건은 그런 인물이었다. 담연은 수원 부농인 최학배 공(公)의 장남으로 태어나 한학자인 할아버지 최두혁 옹(翁)의 보살핌 속에서 호연지기를 키우며 자라났다.

▶“2㎞ 전방부터 기(氣)가 쏠리는 집”=경기 수원시 권선구 평동 7번지. 담연 생가 주소다. 평동(坪洞)을 옛 사람은 벌말이라고 불렀다. ‘벌판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생가에 들어서니 진돗개 세 마리가 손님을 반긴다. 2006년 생가를 복원할 때 들여놓은 품위가 있어 보이는 견공이다. 옛 주인 대신 환영이라도 하는 것일까. 생가는 고즈넉했지만, 고고했고 우아했다.

이 생가는 명당터로도 이미 유명세를 탄 곳이다. 그래서 한때 풍수가들의 생가 방문이 줄을 이었다. 하나같이 ‘예전엔 10리 밖에서도 환하게 보였던 집이다’ ‘2㎞ 전방에서부터 기가 쏠렸다’ 등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생가를 관리하는 박석준 SK텔레시스 부장은 “풍수지리하는 사람에 따르면 기가 모이는 곳이 지금 관리사무실이 있는 한옥 뒷마당 근처”라고 전했다. 좋은 기운이 넘치는 집이라는 얘기다.

생가는 대지 1111㎡(약 336평)에 128㎡(약 39평)짜리 단층 한옥이 들어선 아담하고 정갈한 규모지만, 마당과 건물의 조화가 어우러져 사람이 살기에 좋아 보였다. 생가 복원 때 마당에 있던 2층 양옥집을 철거하면서 시야가 탁 트이고 넓어졌다고 한다.

1940년대 지어진 생가 건물은 대청마루를 실내화하는 등 한국 한옥의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관련 학계에서는 이 한옥을 중요 자료로 보고 있다.

최학배 공은 이 집에서 종건ㆍ종현(SK 선대회장) 형제를 비롯한 8남매를 낳아 길렀다. 담연도 태어나서 결혼해 자녀를 보고 1961년 4월 서울 당주동으로 이사할 때까지 35년을 이곳에서 살았다. 담연 인생에서 가장 많이 머무른 생가, 그래서 그의 숨결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경기 수원시 권선구 평동 7번지에 위치한 담연(湛然) 최종건 SK그룹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생가. 넓지는 않지만 포근한 마당 한가운데 정갈한 한옥이 잘 어울려‘ 명당’의 풍모를 보여주는 듯하다. 수원=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자주 매를 들면 호연지기가 꺾인단다”=담연의 고향 수원은 입지적 조건이 좋아 후일 그가 사업을 시작할 때 좋은 터전이 됐다. 수원 서쪽에는 서호(西湖)라는 큰 호수가 있다. 서호와 연결되는 서호천은 서둔촌과 벌말을 끼고 넓은 벌판을 휘돌아 남쪽으로 흘러간다.

서호천은 수량이 매우 풍부해서 물길을 따라 양쪽으로 펼쳐진 들녘에 농업용수를 공급했다. 가뭄 걱정을 안 하고도 농사를 지을 수 있어 인근 마을 농가는 부농이 됐고, 사람들의 생활도 풍족했다. 특히 평동은 서호천 덕에 농사가 잘돼 예부터 ‘부자마을’로 알려졌다.

최학배 공은 인근 팔탄면 해창리에서 평동으로 옮겨와 나무장사를 시작해 인천 미곡취인소에 쌀을 공급하면서 돈을 벌어 차근차근 농토를 사들였다. 몇 년 새 60마지기가 넘는 논밭을 가지게 됐고, 평동에서 ‘알짜 부자’ 소리를 들었다.

1926년 최학배 공의 장남으로 태어난 담연은 어린시절 누구나 그랬듯이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는 눈을 감고도 천자문을 줄줄 외웠지만, 개구쟁이로도 유명했다. 빨래줄에 널어 놓은 행주치마 끈이 남아나지 않았을 정도였다. 끊어서 팽이채를 만드는 데 썼기 때문이었다.

최학배 공은 그런 아들을 늘 야단쳤다. 그럴 때마다 최두혁 옹은 웃으며 손자 편을 들었다.

“애들은 그저 자유롭게 커야 하느니라. 버릇은 매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란다. 사소한 일을 갖고 자주 매를 들면 아이의 호연지기만 꺾어놓는 법이지.”

할아버지는 장손을 자유롭게 키워 호연지기를 길러주고 싶었을 게다. 사내란 모름지기 호방한 성격을 갖고 있어야만 세상에 나가 떳떳하게 행세를 할 수 있는 법. 이는 최두혁 옹의 뜻대로 담연의 가슴에 새겨졌다. 호연지기를 바탕으로 자신이 한 번 결심한 일은 꼭 해내는 도전정신이 체질화했고, SK를 창업하는 밑거름은 그렇게 생가에서의 가르침 속에서 배양됐다.
 


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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