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정치권, 재벌과의 전쟁 ‘서막’
뉴스종합| 2012-09-26 11:33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과 재벌 간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증인으로 채택되는 등 국감 증인 신청 기업인만 150여명에 달한다. 특히 19대 국회 들어 초강성으로 꾸려진 환경노동위원회와 경제민주화에 목을 매달고 있는 정무위원회가 선봉에 서서 벼르고 있고, 재계는 “소환 포퓰리즘이다” “미쳤다고 청문회 나가냐”는 극단적 단어까지 써가며 반발하고 있어 국회와 재계의 대충돌마저 예고되고 있다.

국회 태안피해대책특위가 지난 25일 여야 만장일치로 이건희 회장과 노인식 삼성중공업 대표이사를 국감 증인으로 채택한 것은 ‘국회-재벌’ 간 전쟁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이 회장뿐만 아니라 거론되는 이름만 해도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SK 회장, 이석채 KT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웬만한 재벌 총수는 모두 들어가 있다. 줄잡아 150명을 훌쩍 넘는다. 

특히 대선을 앞둔 이번 국감장은 ‘경제민주화’ 깃발 아래 여야 가릴 것 없이 경쟁적으로 재계를 압박하는 ‘판’이 될 전망이다. 재벌 회장 등 기업인들이 ‘줄줄이 사탕’ 격으로 국회에서 대(大)망신을 당할 공산이 커진 것이다.

한 국회의원은 이와 관련, “칼자루를 줬는데 애먼 데 쓰니 우리가 칼자루를 제대로 휘둘러야 되지 않겠냐. 이참에 따끔한 맛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재계에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시장 자율에 맡겼더니 골목상권과 하청업체만 죽이는 행태를 더 이상 보고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의원도 “재벌을 죽이자는 것이 아니다”면서도 “일감 몰아주기를 비롯해 회장 일가의 납품 독점권, 불공정 거래, 총수의 배임 등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로 이참에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비례대표 의원은 이에 대해 “여론에 밀려 ‘더 세게 더 세게’ 아니면 재벌편에 서는 것처럼 비친다”며 “재계가 잘못해 고쳐야 할 부분은 많지만, 재벌 소유구조 등 실현 불가능한 것까지 가능한 것처럼 포장하면 오히려 (재계가) 도망갈 구멍만 더 크게 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정치권 움직임에 재계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기는’ 격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선 승리=재계 때리기’라는 등식까지 만들어 재계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또 기업총수 무더기 증인 채택이 경제민주화 등에 사사건건 불만을 표출하는 재계에 대한 ‘복수’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10대 그룹 한 임원은 “기업인 대상 청문회는 의도가 뻔하다”며 “망신을 주고 자존심에 상처 주고 명성을 깎아내리면서 국회의원 자신의 명예만 드높이겠다는 극단적 포퓰리즘”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업계로선 말은 안 하지만 “미쳤다고 청문회 나가냐”라는 공감대가 있다”며 “새파랗게 젊은 의원들이 그래도 기업 경영과 국가를 위해 일했다고 자부하는 기업인을 앉혀놓고, 마치 죄인 취급하면서 강압적으로 때론 비아냥대고 재판장에서 범인 취조하듯 오만방자하게 구는데 그런 자리를 누가 가겠는가”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가 전날 “역대 국정감사는 대규모 기업인 증인 채택으로 기업감사라는 오명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높아진 국민의식 수준을 감안하면 국감의 관행도 획기적으로 바뀔 때가 됐다”며 국회에 비판적인 논평을 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김영상ㆍ한석희 기자>
/hanimomo@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