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지로 본 대선정국 시나리오
18대 대선판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삼국지를 떠올리게 한다. 막강한 인구와 군사력을 가진 대국 위(魏ㆍ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 정권탈환의 명분을 가진 촉(蜀ㆍ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과, 중원에서는 늘 변방 취급을 받았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변수가 됐던 오(吳ㆍ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맞서는 국면이다. 촉-오가 뭉쳐야 위에 대적할 수 있는 현 상황은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논의’와 꼭 닮았다.
18대 대선판 촉-오 동맹에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지만, 중요한 상수가 있다. “끝까지 정치인으로 남겠다” “건너온 다리를 불살라버렸다”며 배수진을 친 안 후보가 내건 조건의 충족이다. 안 후보가 지난 19일 대선 출마 선언에서 ‘변화와 쇄신’ ‘국민 동의’가 이뤄져야만 단일화 협상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상수만 충족된다면 단일화 시나리오는 여러 형태로 가능하다. 민주당이 원하는 제1 시나리오는 손권(안철수)이 유비(문재인)에게 투항하는 시나리오다. 안 후보가 “여러분, 문 후보를 지지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곤 무대를 내려와서 선거 유세 기간 내내 문 후보와 함께 지지유세를 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안 후보가 이미 배수진을 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평가다. 반대로 유비가 손권에 투항하는 그림도 그릴 수 있지만, 민주당 존립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에 가능성은 더욱 낮다.
두 번째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둘 중 하나가 퇴장하는 게 아니라 후보는 단일화하되 정권은 나눠갖는 내용이다. 서로 다투며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는 게 강점이다. 문 후보가 공공연하게 제안한 공동정부론과 책임총리제 카드도 모두 담판론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민주당은 내심 지난해 10월 ‘박원순의 기억’을 상기하며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를 기대하지만 이 역시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서울시장과 대통령이 주는 무게감이 하늘과 땅 차이이듯 문 후보와 안 후보 모두 대권에 도전한 이상 쉽사리 물러설 수 없다는 이유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어느 정도 희생을 강요하더라도 확실한 결과를 볼 수 있는 ‘경선’이다. 이럴 경우 안 후보가 제시한 변혁과 국민 동의라는 조건 역시 경선으로 충족할 수 있다.
물론 경선으로 가기 위해선 또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경선 룰’이다. 단순 여론조사로 하느냐 등등을 놓고 양측 간 셈법이 복잡하기 때문에 치열한 기싸움이 펼쳐지게 된다. 민주당으로서는 지난해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박영선 후보가 박원순 후보에 패한 트라우마를 떠올릴 수 있다.
한편 단일화가 이뤄진다는 전제 아래 그 시점 역시 중요한 변수다. 최대한 많은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선 단일화가 ‘짜잔~’하며 이뤄져야 한다는 데에는 양측 모두 의견을 같이한다. ‘옥동자’가 나오기 위해선 산고가 필요하듯 대선 선거일을 한 달여 앞둔 11월 중순이나 하순께가 최적기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때까지는 양측 모두 때론 각도 세우고, 가끔은 눈을 흘기면서 군불만 땔 공산이 커 보인다. 단일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각 후보 간 지지율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므로 단일화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논의도 극비리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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