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과 '블루스' 추는 요즘 예술가의 초상
책에 따르면 이번 작품은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문제작이라 평가 받은 바 있다.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후기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예리하게 꼬집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쥐식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쥐식인이란, 소위 석사 박사 등 가방끈이 긴 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쥐식인은 현실의 가장 작은 귀퉁이에, 홀로, 자유와 열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만의 고유 영역을 마련한 자들이다. 자신만의 온전한 독립된 세계를 유지해주는 쥐구멍, 그 쥐구멍에 빠진 혹은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쥐식인이다. -6쪽
다시 말해 쥐식인은 예술적 성향을 가진 인간들을 지칭한다. 책은 자신이 추구하는 독립된 세계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삶을 8편의 이야기로 전한다. 첫 번째 단편은 한 소설가 지망생의 이야기다.
그는 글을 쓴다며 벌써 2년 내내 집에서 글자와 사투를 벌이는 남자다. 어느 날 아침 허기에 눈을 떴지만 여느 때와 다른 분위기를 감지했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는 순간 싸한 분위기를 직감했다. 어느 시나리오 작가가 밥과 김치를 구걸하다 죽었다는 뉴스가 안 그래도 그를 마뜩찮게 여겼던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린 것.
“소설이 밥 먹여 주니?” 아버지의 이 한 마디에 결국 숟가락도 들지 못하고 허기진 채 밖으로 나와 친구를 찾아 갔다. 친구의 제안으로 그는 굶어 죽었다던 시나리오 작가 문상을 가게 됐다. 빈속으로 나온 그는 허기를 느끼지만 결국 그곳에서도 밥을 먹지 못한다.
책은 왜 이리 ‘배고픔’에 초점을 맞추는 걸까. 책에 따르면 이는 바로 디지털 혁명을 이룩한 후기산업사회의 모순적 현실을 표방한다는 것이다. 풍요로움을 구가하는 21세기에 기아에 허덕이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가 질문을 던진다. 이는 소설 속 주인공의 시각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예술가의 80%가 한 달에 백만 원 미만의 돈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며, ‘보험을 들려고 했더니 시인은 폐병이나 우울증도 많고 위험직종이니 보험료가 훨씬 비싸서 가입도 할 수 없다’ 등. 어디선가 이미 들은 내용이었지. 마치 자신들의 이견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언론에 이미 나온 것을 입으로 옮겨놓은 것들뿐이었지. 예술가의 열악한 형편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들고 나오는 단골메뉴.- 28쪽
책은 팩트와 픽션을 절묘하게 조합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책 속에는 한 젊은 작가의 죽음이나 룸살롱, 춤 문화 같은 우리 사회의 '뉴스'들을 소재로 차용했다. 두 번째 단편은 대학 교수들의 좌충우돌 이야기이다. 작가는 책을 통해 탱고나 자이브 등 춤을 배웠다고 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내려가다 보면 바로 우리 자신, 혹은 우리가 존경하는 지식인의 이야기임을 깨달을 수 있다.
이밖에 다른 단편들 속에서도 작가의 일면을 투영시킨 대목이 나온다. 이를테면 신조어를 연구하는 김 교수라는 설정이 그렇다.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이라는 책을 펴낸 작가의 이력을 아는 독자라면 작품 저변에 깔린 사회적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읽는 재미가 있다.
[북데일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