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피로사회
뉴스종합| 2012-12-26 11:11
세밑, 언론사들이 ‘올해의 책’을 꼽고 있다. 언론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올해의 책 선정에 빠지지 않고 꼭 등장하는 책이 한 권 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다. 2010년 독일에서 출간돼 독일 지성계에 파장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올해 번역돼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만성피로 상태인 한국인들에게 제목부터가 가슴에 와 닿은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이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은 현대 사회를 새로운 각도에서 성찰한 점이다. 과거가 ‘해서는 안 된다’로 이뤄진 부정의 사회였지만 현대사회는 ‘할 수 있다’가 최상의 가치다. 성공을 위해 긍정의 정신이 강조된다. 하지만 긍정의 과잉,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한 교수의 주장이다. 성과사회의 우울의 근원은 자기가 자신을 완전히 타버릴 때까치 착취하는 강박 속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가 자기와 경쟁하고 끊임없이 뛰어넘어야 하는 성과사회의 자기 강요는 파국으로 끌날 것이란 묵직한 분석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책은 국내 출판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18대 대통령 당선자에게 주고 싶은 책’ 1위로 꼽혔다. 이 책을 새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이유로는 ‘국정 운영에 지혜를 주고 싶어서’였다.


‘한강의 기적’ ‘압축성장’은 산업화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온다. 하지만 OECD 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이 말해 주듯, 한국 사람들의 삶의 질은 바닥이다. 외환위기의 혹독한 경험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겠지만 성과나 효율이 생존방식의 가장 큰 미덕이 된 지 오래다.

올해의 베스트셀러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한국사람들은 피로사회 속에서 힐링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전창협 디지털뉴스센터장/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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