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아웃렛
마트 내 질주본능, 카트의 일생
뉴스종합| 2013-02-06 08:08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쌀 20㎏, 2ℓ들이 생수 6병…. 혼자서는 낑낑 거릴 물건도 내 안에 들어오면 거뜬하지. 나는 단순히 짐을 나르는 게 아냐. 나는 어느새 단란한 가정의 상징이 됐어. 마트 안에서 나를 끌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게 신혼부부의 ‘로망’처럼 됐거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만 내 수명은 5년이 고작이야. 그렇지만 5년간 나는 물가 때문에 한숨쉬는 주부들의 시름, 군것질 하나로 똘똘 뭉치는 부자(父子)의 정(情) 등을 옆에서 지켜보며 서민들과 호흡한다고. 나를 빼놓고는 대형마트를 얘기할 수 없어. 나는 쇼핑카트야.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대부분 김포에 있는 한 제조기업에서 태어나. 나는 보통 철제로 만들어지는데, 철사를 용접해서 탄탄한 기골을 완성하지. 이렇게 태어난 나는 키는 1m10㎝, 몸무게는 22㎏ 정도.

최근에는 플라스틱 소재로 태어난 동생도 생겼어. 요즘 친환경 바람이 불면서 내가 태어나는 과정에 공해물질이 발생한다는 게 많이 지적됐거든. 나를 탄생시킬때 필요한 원자재 가격이 계속 오르는 것도 부담이었던 것 같아. 플라스틱 동생은 몸무게가 17㎏으로 나보다 한결 가벼운 편이야.

나는 태어나서 바로 대형마트 매장에 입사하는데, 보통 한 매장에 친구들이 800~1000대 정도 있어. 매장 크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 입사하고 나면 줄곧 고객들이 끄는대로 매장 안을 돌아. 이동 거리를 보면 보통 하루에 3㎞. 짐을 180㎏까지 지탱할 정도로 힘이 좋지만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맞나봐. 5년 정도 돌고 나면 아무래도 지쳐. 매일같이 물건 싣고 매장 돌고, 운전실력이 부족하거나 험하게 끄는 고객이라도 만나면 여기 저기 몸이 부딪히기 일쑤라고.


그래서인지 우리 정년은 5년이야. 그래도 5년이면 평균 4만5000㎞를 이동한 셈이니, 이 정도면 열심히 일한 거지?

퇴직하고 나면 고철로 판매돼.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몸값이 10만원이었는데 고철로 나가려니 기분이 비참해지기도 하지만, 세상사 어쩌겠어.

그나마 플라스틱 동생은 처지가 좀 나은 편이야. 동생은 퇴직 후에 재활용이란 이름으로 재취업이 되거든. 생각하면 할수록 동생이 부러워. 플라스틱 동생은 가벼워서 끌기 쉽고, 밝은 노란색이 귀여워서 매장에 입사하자마자 고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퇴직 후에도 재활용되니까 친환경 카트라고 각광받고 있어. 몸값은 나보다 2배 비싼데도 벌써 이마트에만 4만5000대가 있을 정도로 인기야.

우리나라 고객들 까다로운 것 알지? 그래서인지 요즘엔 희한한 친구들도 많아. 홈플러스에서는 카트 끄는 고객들의 운동량을 체크해주는 친환경 건강카트가 있어. 손잡이에 센서가 있어서 고객들의 이동거리와 칼로리 소모량을 환산해서 보여주는 거지.

이마트 일부 점포에는 토이카트가 있어. 장난감과 카트의 만남이랄까. 아래쪽에는 아이들이 장난감 자동차를 타고 있고, 위쪽에 장 본 물건을 담을 수 있도록 한거지. 매장에서 심심해 하는 어린이들을 달래기 위해 만든건데, 매장당 20~25대 정도가 있대.

참,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게 있어. 고객들이 날 좋아해주는 건 고마운데, 매장 안에서만 예뻐해줬으면 좋겠어. 날 과도하게 애용하려는 고객들 때문에 본의 아니게 가출(?)하는 경우가 있다고. 행방 불명된 친구들이 많아지면 매장 직원들이 한 번씩 근처 주거지역을 돌아. 한 차례 순례(?)를 하고 나면 아파트 주차장, 단지내 한 구석 등에서 추위에 떨었던 친구들이 직원 손에 이끌려 매장으로 돌아와.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데, 보기만 해도 안타깝더라고.


또 내가 180㎏까지 실을 수 있는 건장한 일꾼이라고 해도 너무 무리하게 짐을 실으면 안돼. 어린 아이들을 태울 때는 유아 1명만 지정된 좌석에 앉히는 게 좋아. 애들이 내 안에서 서있거나 매달려 있으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니까. 너무 많은 짐을 실어서 앞이 안 보이면 접촉사고가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하고.

요즘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침해한다고 눈총을 받아서인지 내 입지도 좁은 것 같아. 괜히 눈치가 보이고. 그렇지만 나만큼 서민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도 없다고 자신해. 내가 늘 고객들의 건강한 짐꾼이 될 수 있도록 아껴줄거지?

도현정 기자/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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