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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랑이 왜 주목받고 있을까?
엔터테인먼트| 2013-03-06 08:25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지난 3일 종영한 KBS 주말극 ‘내딸 서영이’는 가족관계에서 새로운 관계와 소통을 만들어가는 드라마였다.

특히 아버지 이삼재(천호진)와 딸 서영(이보영)이 그동안의 불편했던 관계를 회복해 서로 이해해가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가족관계에서 아버지는 항상 겉도는 존재였다. 어머니와 자식 간에 이뤄지는 소통에 비해 아버지의 가족 내 소통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그것이 최근 들어 대중문화에서 아버지가 자주 소환되고 있는 이유다.

MBC ‘아빠 어디가’의 다섯 아빠들은 이전에는 엄마 없이 아들, 딸과 잠을 자고 오는 여행을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아버지들은 자식을 잘 모른다. ‘딸바보’ ‘아들바보’이긴 한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른다. ‘내딸 서영이’의 서영은 아버지에게 “왜 아버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는 사랑이라고 하세요?”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대중문화 속 아버지의 모습은, 아버지가 강하게 부상됐던 IMF 때인 1900년대 말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당시에는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밀려났거나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들어가 있었다. 당연히 왜소해진 아버지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콘텐츠들이 많이 나왔다.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가 한동안 유행했다. 


IMF는 한국 남자의 가부장 체제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다. 가부장적 체제에서 경제력을 상실한 가장은 권위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대중문화 속 아버지도 나약해진 아버지를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나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최근의 대중문화 속 아버지는 아버지 자신의 가난함보다는 아버지와 자식 간의 관계와 소통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는 오해가 끼어 있는 세대간의 관계 복원이기도 하고, 세대간 관계와 질서를 새로 만들어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내딸 서영이’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고 결혼했던 서영이가 병실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하자는 대로 다 할게요”라고 말할 때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자식은 저절로 화해하며 관계가 복원되는 건 아니다. 변화와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이삼재는 성실한 삶의 자세로 돌아왔다. 딸에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도, 그 딸의 앞날만을 생각하는 진한 부성애를 보여주었던 게 딸의 마음은 물론 시청자까지 변화시켰다. 자식을 위한 마음은 굴뚝 같지만 현실적으로 뒷받침해주기 힘든 이 땅의 많은 아버지들은 이삼재를 보면서 눈물을 훔쳤을 것이다. 서영은 도저히 변화할 것 같지 않던 아버지가 극도의 절약으로 성실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절대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관점으로 이해하며 부녀간에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게 됐다.

‘아빠 어디가’에서 초보아빠 김성주는 민국이가 매번 열악한 잠자리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데 대해 속상해하고 대성통곡을 하자 난감해했다. 어쩌면 김성주는 대한민국 아버지들이 자식과의 관계에서 한 번쯤 겪어야 하는 고난극복 성장통 같았다. 권위적인 아빠 성동일도 아들 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미숙했지만 갈수록 서로 가까워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 말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이를 상대가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서로 불편한 관계와 소통을 유지하게 된다. 이는 아버지와 자식 간에도 새로운 관계와 소통을 만들어가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아버지도 무거운 가부장의 짐을 내려놓고 자식에게 다가가고, 자식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아버지를 이해하는, 아버지와 자식 간의 이런 소통을 통해 서로 ‘힐링’하는 모습이 대중들이 바라는 상이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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