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반
흐르지 못하는 강…나룻배는 날마다 낡아갑니다
라이프| 2013-11-21 11:20
번성했던 항구는 빛을 잃고, 영산강엔 배가 들어오지 않는다
거리를 메운 삭힌 홍어 냄새는 지난 사랑의 추억만큼이나 아찔하고…
물안개 휘감은 영산강변 따라 한없이 걷고만 싶다


영산강에 수장된 사랑 이야기가 있다. 제창마을 아랑사와 진부촌 아비사의 이야기다. 고기잡이를 하던 총각 아랑사는 강 건너 처녀 아비사가 우는 모습을 본다. 사정인즉, 병환 중의 아버지가 물고기를 먹고 싶어하는데 처녀는 물고기를 잡을 수 없다 한다. 하여 총각은 잡은 물고기를 처녀에게 내주었고 둘의 사랑은 시작된다. 밤마다 앙암(仰巖)바위에서 아랑사를 만나 사랑을 나누던 아비사를 본 진부마을 총각들은 질투에 눈이 멀어 바위 밑으로 아랑사를 떨어뜨려 죽인다. 그런데 이 처녀, 그 뒤로도 계속 바위에 오른다. 총각들이 다시 보니, 처녀는 구렁이와 사랑을 하고 있다. 해괴한 일이다. 총각들은 처녀와 구렁이를 또 죽인다. 그 후 진부마을 총각들은 시름시름 앓다 죽어나갔고, 정성껏 제사를 올려 죽은 원혼들을 위로한 후에야 화가 멈췄다.

20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또 하나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내 어린 기억 속에 움직임이 몹시 불편했던 거구의 아주머니는 3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마음껏 걸어본 적이 없었다. 나주(羅州) 아저씨는 평생 병상의 아내를 돌봤다. 그리고 11월의 문턱에서 그녀를 떠나보냈다. 의식불명의 아내가 떠나기 전 한 달여간의 돌봄에 혹여 부족함이 있었을까 자책한다. 이렇게 했더라면, 저렇게 했더라면 일 년이라도, 한 달이라도, 하루라도 더 내 곁에 있었을까 자책한다. 그리고…. 입맞출 사람이 곁에 있었기에 한평생 행복했다고 말한다.

한철 곱게 뽐내던 단풍들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남은 번뇌를 떨어내던 11월, 내 지난 사랑을 반추하며 영산강 물길 따라 천년고도 나주의 고요 속으로 침잠했다.

여명이 휘감은 영산강변 물안개 속에서는 당신도 나도 소실된다 . 이 절대 적막 속에서 어느 누가 함께 고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영원할 것 같았던 새하얀 어둠을 뚫고 아침은 밝아오고야 만다.


▶흐르지 못하는 강… 불 꺼진 항구=노안천주교회에서 주막거리쉼터까지 총 110㎞에 달하는 ‘풍류락도 영산가람길’은 7개 길로 나뉘어 있다. 특히 영산포 선창거리는 나주시가 5대 명품길로 지정한 근대 거리권에 속해 있다. 영산포는 영산강 남안(南岸)에 위치한 포구로, 1970년대까지 동력선이 드나들던 곳이다. 본래 조선 시대 임금님께 곡식과 세금, 진상품 등을 실어나르던 강북 쪽의 포구였던 것에서, 일제가 강 남쪽에 개폐식 목교를 놓고 금융기관을 세우고 수탈 품목을 실어나르면서 지금의 영산포로 불리게 됐다.

영산강 하굿둑이 건설된 후 바닷물은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고 영산강은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관광상품으로 재현된 목선 ‘왕건호’만이 애잔한 향수의 닻을 내리고 있다. 일제에 의한 강제 근대화로 번성했던 항구도 이젠 빛을 잃었다. 객주들이 운영했던 곡식 창고도, 하룻밤 술과 도박과 여자로 소 판 돈을 탕진했던 새끼내(영산강 지류 중 하나로 문순태의 소설 ‘타오르는 강’의 배경이 됨) 주막거리 저자꾼들의 흥청거림도 간데없고, 삭힌 홍어 냄새만이 포구거리를 가득 메웠다. “입천장 홀라당 벗겨져 봐야 제대로 먹었다”고 한다니, 곰삭은 홍어, 그야말로 떠나간 옛 사랑의 추억만큼이나 아득한 그 향 한 번 친해지기 힘들다.

본격 추위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 붉은 단풍이 절정이었던 금성산 둘레길은 가족과 함께 쉬엄쉬엄 걷기 좋은 곳이다. 야생에서 자라는 녹차밭에서 하얀 녹차꽃향을 맡아보는 것이 큰 묘미다.

기름 짜는 냄새가 홍어 냄새로 마비된 코끝을 달래는 죽전거리를 지나 앙암바위에 올랐다. 삼국 시대 아랑사와 아비사의 사랑 이야기가 깃든 절벽 바위를 이곳 사람들은 ‘아망바우’ 혹은 ‘상사바위’로 부른다. 뜬금없이 궁금했다. 연인을 잊지 못한 아랑사는 구렁이가 돼 못다 이룬 이승의 사랑을 찾아 밤마다 이곳에 왔을까.

강 건너편 택촌마을에서 났다는 여걸 ‘나합’의 이야기도 있다. 구한말 외척 세도가 김좌근의 애첩으로 권세를 부렸던 여인이다. 전라도 관찰사였던 이서구가 어느 날 부하를 불러 “나주로 가라. 아이가 태어났을 것이니 사내면 죽이고 여자면 살려라”라고 한다. 택촌에 여자아이가 태어났다고 보고 하니 이서구는 말한다. “그년 세상깨나 시끄럽게 하겠다.” 당시 나합을 거치지 않고선 벼슬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더니, 김좌근은 그 지극한 사랑으로 사랑채 기둥을 잘라 용마루를 주저앉혀서라도 교동살이를 답답해하는 나합에게 서울 남산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왕건이 나주를 올 때 타고 왔던 배를 복원한 목선 ‘왕건호’는 당시 배 안에서 말타는 연습이 가능했을 정도로 규모가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나주 영산 도내기샘/상추 씻는 저 처녀야/상출랑을 씻거들랑/속잎은 네가 먹고/쭉대길랑 나를 주면/동지섣달 긴긴밤에/쭉대기값은 내가 허리.” 미모의 나합을 유혹하고자 총각들이 애를 태웠다던 택촌마을 도내기샘은 1913년 일제가 철도를 내면서 사라지고 이 노랫말만 남아 전해져 오고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서고가 있는 곳, 카페 영산나루… 그리고 목사내아의 밤=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한 선창거리의 밤바람은 차가웠다. 카페 영산나루는 현직 의사와 전직 교사 부부가 운영하는 영산포의 명소로,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히 감성 넘치는 곳이다. 프랑스산 ‘마르코폴로’를 영국식 찻잔에 담아 한 모금 마시니 잘 알지도 못하는 홍차 맛에 이국적인 향이 가슴 깊숙이 퍼졌다. 수백년 된 팽나무가 자리 잡은 정원을 가로지르면 붉은색 벽돌로 지은 별채가 비자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나주 영산포 농지를 수탈하기 위해 1909년 일제가 설립한 동양척식주식회사 영산포지점의 문서를 보관했던 곳’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유서 깊은 팽나무는 목사내아에도 있었다. 막 구들장 공사를 마친 목사내아의 방바닥은 뜨끈했다. 목사내아는 나주목사의 살림집이었던 곳으로, 1980년대 후반까지 실제 나주군수가 생활하다가 2009년부터 숙박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목사내아는 조선시대 목사가 정무를 보던 동헌 근처의 살림집이다. 현재 일반인들에게 숙박시설로 제공되고 있으며 최근 구들장 공사를 마쳤다.
카페 영산나루는 홍차맛이 이국적이다. 수백년 된 팽나무가 조명을 받아 웅장함을 더한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서고는 개인 별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용머리에서 나오는 기운이 이 집 마당에 닿아 있다거나, 당시 최고 엘리트였던 정3품 나주목사가 살던 곳이어서 관운이 좋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여전히 귀를 솔깃하게 한다. 이곳에서 하룻밤 묵어 간 일용직 노동자가 석 달 만에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 하고, 새마을과장이 이 집에서 3년 살고 난 후에 시장이 됐다 하고, 아이를 못 갖던 부부가 하룻밤을 보내고 아이를 갖게 됐다 하니, 마당 한쪽에 600년 된 벼락 맞은 팽나무 또한 상서로운 기운이 한껏 뻗친다. 올해 못다 이룬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모두 잠든 밤, 목사내아 대청마루에서 홀로 앉아 밤하늘 바라보며 날 버리고 떠난 임이 십리도 못 가 발병 나길 조용히 빌어볼 일이다.

▶새벽 6시30분 금강정… 기다림의 남평역=이튿날 일출을 보기 위해 금강정으로 향했다. 목사내아에서 차를 타고 영산강변도로를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금강정은 이미 여명이 휘감고 있었다. 신곡리 봉곡마을에 위치한 금강정은 광산 김씨 김시중의 아들 김상수가 부친의 노년 휴식을 위해 영산강변에 만든 정자로 알려져 있다.

언덕을 5분 정도 올라 내려다보니 안개구름이 사방을 뒤덮어 실로 장관이었다. 밤보다 더 짙은 새하얀 어둠 속에서 영산강은 깊이와 폭을 알 수 없었다. 저 멀리 드라마 ‘주몽’ ‘태왕사신기’ 등을 촬영했던 나주영상테마파크가 구름 위의 섬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수묵화가 열두 폭 병풍인 듯 펼쳐진 풍경의 절대 적막 속에서 어느 누가 더 이상 시끄러운 속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해가 뜨고 한참을 지나서도 안개는 걷힐 줄을 몰랐다. 언덕을 내려오니 목포까지 이어지는 영산강 종주 자전거길이 황홀한 물안개 속으로 소실점을 대고 있었다. 걸어봤다. 이슬 머금은 갈대숲에 이따금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이대로 세상 끝까지 걸을 것만 같았다.

일제강점기 최대 지주였던 구로즈미 이타로의 저택. 나주시가 매입해 보수를 마쳤다. 이달 말부터 숙박시설로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흰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그믐처럼 몇은 졸고/몇은 감기에 쿨럭이고/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중략) 자정 넘으면/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곽재구의 詩 ‘사평역에서’)

광주 송정역에서 경남 밀양 삼량진역까지 연결되는 300㎞의 경전선 구간에 위치한 남평역은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의 배경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도 유명한 남평역은 역사 안에서 철도가 안 보이고 철도 쪽에서 역사가 안 보이는 특이한 구조로, 산모퉁이를 돌아 기차가 들어오는 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리웠던 순간들을 떠올리기에 간이역만큼 좋은 장소가 있을까. 소중했던 모든 것은 결국 떠나기에 간이역은 우리 인생을 많이 닮았다.

영산포는 목포, 군산과 함께 호남의 3대 근대도시로 꼽힌다. 일본식 근대 건물이 곳곳에 남아 있는 영산포 선창거리는 홍어 냄새와 기름 냄새가 가득하다.

나주 아저씨는 떠난 아내를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고 간이역에 남아 아직 그리워한다. 고요한 영산강 물결 속으로 잠시 침잠했던 지난 사랑의 추억은 슬슬 역을 떠날 채비를 한다. 10월보다 뜨겁지도, 12월보다 차갑지도 않은 11월은 이별하기 좋은 달이다.

나주=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사진제공=피엔제이커뮤니케이션즈]


무엇을 먹을까

▶영일복집=50년 전통의 복탕 전골요리로 유명한 영일복집은 찹쌀가루를 풀어 넣어 걸쭉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쫄깃한 복어껍질무침과 살얼음 띄운 콩나물국이 뜨끈한 복지리탕과 잘 어울린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굳이 미나리와 육수를 계속 ‘리필’해주시는 사장님 인심 또한 복지리 양만큼이나 푸짐하다. 아무리 포만감이 들어도 남은 육수로 죽을 만들어 먹는 마무리 코스를 빼놓는 것은 생물 복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061)334-3598


▶영산포홍어=홍어의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3층 한옥 건물로, 흑산도 홍어의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홍어요리 초급자에겐 홍어삼합을, 상급자에겐 홍어찜과 홍어애를 추천한다. 특히 초급자들은 바삭한 질감의 홍어튀김과 홍어전의 ‘비주얼’을 경계할 것. 어마어마한 맛과 향에 속았다는 생각이 들기 십상. 식사 전 겉옷을 벗어두는 것도 필수. ‘홍어의 거리’를 나와서도 홍어의 추억이 옷에 배어 오래도록 곁을 떠나지 않는다. 1층 저장고에서 나는 삭힌 홍어의 아찔한 향 또한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061)337-5000


▶노안집=3대째 나주곰탕의 맛을 이어가고 있는 노안집은 금계동 매일시장 입구에 있다. 이곳은 ‘나주 곰탕거리’로도 유명하며, 금성관, 나주향교, 목사내아 등의 명소와도 가깝다. 금강정에 올라 새벽 안갯속 일출 장관을 목격하고 나면 제아무리 국에 밥 말아먹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노안집 곰국을 단숨에 들이켤 수밖에 없다. (061)333-2053

▶송현불고기=연탄불에 구워지는 달달한 돼지불고기 향만큼 이성을 마비시키는 음식이 또 있을까. 동신대 인근에 위치한 송현불고기는 얇게 저민 연탄돼지불고기를 1인분씩 구워 담아낸다. 일행이 주문한 양이 모두 나올 때까지 기다림은 미덕이라 하겠다. 나주를 떠나기 전 아쉬움을 달래며 포만감도 함께 채워보자. (061)332-6497

나주=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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