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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냄새 짙어지는 동북아
뉴스종합| 2013-11-27 11:15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울려퍼진 세르비아 청년의 총성은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꿔놨다. 총성은 긴 파장을 일으키며 1차대전을 촉발시켰다. 8월 4일 독일군이 중립국 벨기에를 공격하면서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 시작됐다. 벨기에를 점령해 프랑스 공격의 교두보를 확보한 독일군은 속도전을 펼치며 파리로 진격했다. 영국의 프랑스 지원으로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전쟁 양상은 참호전으로 변했다. 참호전은 전쟁이 아니라 ‘도살’이었다. 1915년 프랑스는 장병 143만명의 전사를 대가로 불과 5㎞를 전진했다. 한 발의 총성이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대량 살육전으로 비화될 것이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중국이 ‘방공(防空)식별구역(ADIZ)’을 선포하면서 동북아가 전쟁의 ‘포성’에 휩싸일 것이란 우려감이 증폭되고 있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댜오위다오(釣魚島ㆍ일본명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ㆍ일 분쟁이 해상에서 공중으로 확대됐음을 의미한다. 공중에서의 대치는 우발적인 무력충돌로 발전할 가능성을 높인다. 특히 군사기술의 발전은 이를 부채질한다. 양국은 공중조기경보통제기나 무인항공기의 투입을 부쩍 늘리고 있다. 아마 동중국해는 무인항공기에 의해 시작된 세계 최초의 전쟁무대가 될지도 모를 것이다.

이미 중ㆍ일 갈등은 위험한 단계로 접어들었다. 미국은 중국의 이번 조치가 70년 가까이 동북아 지역에서 유지돼왔던 미국 중심의 질서에 대한 본격적인 첫 도전이라고 판단, 당사국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밀월관계를 유지해온 한ㆍ중 관계에도 파열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미국은 중ㆍ일 간 충돌사태가 발생하면 일본을 위해 개입하겠다면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동시에 미ㆍ일 공조체제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군사력 동원 가능성 등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방공식별구역 선포 조치를 철회할 뜻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아ㆍ태 지역 최대 경제체로 부상했고 군사적으로도 발전이 빠르다. 외교기조도 바꿨다. 중국의 주권과 핵심 이익에 양보가 없을 것이란 점을 명확하게 밝히면서 강경엔 강경으로, 협력엔 협력으로 대응하는 식이다.

조용히 힘을 기르자던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정책은 폐기됐고 ‘거침없이 상대를 압박한다’는 뜻의 ‘돌돌핍인’으로 전환됐다.

대국으로 굴기한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ㆍ일 동맹이 서로 평행선을 달리며 동북아 정세를 뒤흔들고 있다. 도박판의 판돈을 갈수록 올리며 위험한 길을 질주하고 있다.

전쟁은 집단적 오판과 자만심의 결과라고 한다. 상대방에 대한 적의와 흥분, 고취된 애국심은 자신을 통제할 힘을 박탈해버린다. 결과는 참담한 비극이다. 인류는 이 같은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잊고, 다시 배우기를 반복하면서 비싼 대가를 치러왔다.

동북아에서 화약 냄새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그러나 전쟁을 쉽게 외치지 말자. 누구도 원하지 않고, 누구도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은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 

박영서 (베이징 특파원) py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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