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세월호 슬픔 속 볼썽사나운 ‘김종준 싸움’
뉴스종합| 2014-04-23 11:40
일본의 검술인 ‘거합도(居合道)’는 검(劍)은 항상 검집에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일단 검이 검집을 벗어나 길이와 날선 정도가 드러나면 검의 위력이 상당부분 감퇴하기 때문이다. 공격시 순식간에 검을 뺐다 집어넣는 발도술을 생명처럼 여긴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긴 가운데 금융권에선 김종준 하나은행장의 사퇴 여부를 둘러싼 금융감독원과 하나은행 사이의 기싸움이 볼썽사납다.

금감원은 지난 17일 하나캐피탈 사장 시절 미래저축은행 투자 손실에 대한 책임으로 김 행장에게 중징계(문책경고)를 내리면서 사실상 자진 사퇴를 유도했다. 하지만 김 행장이 남은 임기를 완주하겠다고 나오자 금감원은 불쾌감을 표시하며 김 행장 징계에 대한 상세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까지 나서 금감원을 향해 강한 불만을 터뜨렸고, 금감원은 김 전 회장에게 자중하란 식으로 되받아치며 감정싸움으로 비화됐다.

어쨌든 이런 과정으로 금감원의 ‘의중’이 분명히 드러난 셈이기 때문에 김 행장이 거취 문제를 다시 한번 고민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또 현재 하나SK-외환카드 통합 등 하나금융그룹이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김 행장의 재임으로 금감원의 고강도 조사가 들어올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대신 임기 완주 의사를 공식 발표한지 며칠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추후 입장을 다시 밝히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김 행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게 된다면 금감원이 받게 될 내상(內傷)도 작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감원이 시중은행장 퇴진에 노골적으로 관여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또 경영권 문제에 이런저런 카드를 너무 쉽게 사용했다는 점에서 감독당국으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깎아 먹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감원은 지난해 이장호 전 BS금융지주 회장을 사실상 축출했다는 비난을 산 바 있다. 금감원이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관행 확립을 위해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온당하다. 하지만 칼은 칼집에 있을 때 가장 위용을 뽐낼 수 있다는 교훈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서경원 금융투자부 gil@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