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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금리 안 내리면 다 죽어” 30대 ‘영끌족’ 2021년보다 대출 더 받았다[착한 빚은 없다]
뉴스종합| 2024-09-26 10:30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연합]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고금리 상황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매수 심리가 불타오르는 가운데, 유독 30대 차주의 주택담보대출 잔액 상승세가 여타 연령대에 비해 높은 수준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던 지난 2021년과 비교해서도 두 배 가까이 많은 수요가 주담대에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부동산 경기 위축에 따른 가계 재무건전성 악화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이유다.

30대 ‘영끌족’이 주담대 증가세 주도했다

26일 헤럴드경제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코리아크레딧뷰로(KCB) ‘전 금융권 가계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30대 차주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56조1574억원으로 지난 2023년 말(144조7036억원)과 비교해 11조4537억원(7.92%)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가파른 증가세다. 올해 주담대 잔액이 10조원 이상 늘어난 연령대는 30대 차주가 유일했다. 그 뒤로는 ▷40대 9조8780억원 ▷50대 7조6375억원 ▷60대 이상 5조6414억원 등으로 집계됐다. 올해 전체 주담대 잔액이 35조3956억원(3.53%)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전체 3분의 1에 속하는 32.4%의 주담대가 30대 차주들에 집중됐다는 얘기다.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의 대출 안내문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

이는 코로나19 확산과 초저금리 여파로 촉발된 패닉바잉(공황매수) 사태가 벌어진 2021년과 비교해서도 두 배가량 빠른 증가세다. KCB에 따르면 지난 2021년 한 해 동안 30대 차주의 주담대 증가액은 11조8122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7월까지만 30대 주담대 잔액이 2021년 주담대 증가액의 97%가량 늘어난 셈이다.

지난 8월에도 은행권에 역대 최대 수준의 주담대 잔액이 몰린 것을 고려하면, 이미 청년층을 중심으로 2021년 수준을 뛰어넘는 부동산 ‘광풍’이 불어닥친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8월 중 주담대 잔액 증가폭은 8조9115억원으로 집계 이래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고금리 여파로 인해 주담대를 제외한 여타 대출 규모는 꾸준히 감소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주담대 증가액이 사상 최고 수준을 갈아치우며, 전체 가계대출 규모 또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7월 말 기준 30대 차주의 가계대출 잔액은 408조1735억원으로 전 연령대 중 올해 가장 높은 수준의 증가액(5547억원)을 기록했다.

고금리 ‘영끌’에 소비위축 우려

서울 한 부동산중개사무소.[연합]

문제는 이같은 ‘영끌’ 열풍이 향후 국내 경제 전체의 취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비여력 약화다. 특히 주택 구매 시 자기자금 비중이 낮은 영끌족이 늘어날 시, 전반적인 소비 위축 현상이 나타날 위험이 높다. 소득 중 상당 부분이 원리금 상환 등에 투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또한 이달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통해 고금리 등으로 인한 원리금 상환부담을 최근 민간소비 회복 지연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했다. 보고서는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원리금 상환 부담은 금리 상승으로 인해 순자산 가치의 손해를 보는 가계(30·40대 등)를 중심으로 소비여력 개선을 제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최근 차주들에 적용되는 주담대 금리는 2021년과 비교해 더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당시에는 1% 미만의 0%대 기준금리가 유지된 영향이다. 이 경우 원리금 상환 부담에 따른 소비 위축 우려는 더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동안 국내은행이 취급한 주담대 평균금리는 3.85%로 지난 2021년 2분기(2.72%)와 비교해 1.13%포인트 높았다.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의 대출 안내문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

심지어 금융권에서는 향후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된다 하더라도, 주담대 금리 수준이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쉽사리 잡히지 않고 있는 데다,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의 종착지가 초저금리로 향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한 영향이다. 특히 지난 초저금리 시대에 대출을 받았던 차주들의 금리가 갱신되며, 전반적인 상환 부담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향후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가계 전반의 재무건전성 악화도 가속화할 위험이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집값 하락 현상이 나타난 지난 2023년 1분기 말 기준 39세 이하 가구주의 순자산 보유액은 평균 2억3678억원으로 1년 새 2462억원(9.4%) 감소했다. 이는 전체 평균 감소율(3.7%)의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당시 30대 이하 가구의 자산 대비 부채 비율 또한 29.6%로 전 연령대 평균(17.4%)과 비교해 12%포인트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이 청년층의 ‘패닉바잉’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동산 경기 부양과 가계부채 관리 사이에서 부처 간 상반된 정책 메시지가 나오는 등 엇박자가 발생하며, 관리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다. 이인영 의원은 “현재 ‘영끌족’ 사태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엇박자 정책에 따른 부채 관리 실패의 책임”이라면서 “정부는 선명하고 일관된 정책으로 안정성 있는 금융시장을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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