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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이제 치유의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
엔터테인먼트| 2014-04-24 10:38
“…이번주 방송분… 재미있나요?” “네? …재미있냐라뇨?”

갈 길 잃고 황망한 마음은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입밖에 내고 보니 묻는 이도 답하는 사람도 곤혹스럽고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말은 일상의 뜻을 배반했다.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한 지상파 방송국 편성팀과 예능ㆍ교양국 사이에서 오갔던 한 대화다. 편성팀과 PD들은 말을 내뱉고서야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머릿속에는 한달간 예능 관련 프로그램이 결방됐던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의 일들이 떠올랐다.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각 방송사에선 오락프로그램의 방영을 중단했지만 예능국의 책임 프로듀서들은 매 프로그램마다 편성팀의 통보를 기다려야 했다.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국민들의 안타까운 심경에 혹시 누가 될만한 프로그램이냐는 뜻의 물음이었지만,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한 대화는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국가적인 재난 사태에 웃고 떠들고 노래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각 방송사는 사고 이후 특보 체제로 전환해 온종일 긴급 뉴스를 타전했다. 시청자들의 눈도 뉴스특보에 고정됐다. 거듭 확인되는 최악의 연안여객운송시스템, 무능하고 부실한 관련 기관들의 재난방재대처, 국가 위기관리체제의 총체적 붕괴는 우리의 맨얼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자괴와 수치, 분노가 뒤섞인 슬픔으로 되돌아왔다.

참사 9일째. 국민들의 슬픔과 안타까움이 더욱 깊고 무거워지고 있다. 방송, 영화, 가요 등 대중문화계의 일상은 멈췄고 희망을 구해내지 못하고 더 큰 절망만을 안기는 TV뉴스특보로 인해 더욱 커지는 국민들의 ‘집단 우울증’에 대한 염려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언제 어디서부터 치유를 시작해야 할까. 방송사 관계자들은 일부 시청자들이 뉴스특보 이외의 프로그램을 편성해달라는 전화도 방송사에 해오고 있다고 전한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뉴스특보에 시청자들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국민적 우울증세가 심화된 것 같다”고 조심스러운 진단을 하는 관계자와 전문가들도 있다.

이때 대중문화는 무엇을 해야 할까. 방송은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다시 한번 고민을 하게 된다. 신속하고 정확한 재난보도는 기본이며, 대참사를 마주한 상황에서 일정 기간 애도기간을 가지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때문에 방송3사는 현재 드라마는 방영, 예능은 결방이라는 원칙을 세웠다. 특히 코미디 프로그램의 결방은 한 달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를 시작하는 것 역시 ‘방송의 기능’이다. 적절한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들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돕는 것 역시 방송의 역할이다. 그래서 서로를 위로해줄 적절한 치유 프로그램의 부재는 아쉽다. 매일 오후 11시대를 장악하던 예능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세월호 사고를 집중 분석하는 특별대담이나 현장기록 식의 시사 프로그램, 과거 다큐멘터리로 채워졌다. 결방 아니면 뉴스특보로 이어가는 TV를 보면서 그동안 각 방송국들이 시청률 지상주의에 빠져 오로지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 ‘올인’해왔다는 현실이 역설적으로 드러나 더욱 뼈아프다. 이제라도 방송이 전국민을 치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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