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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X파일] ‘도시의 법칙’, “뉴욕 가서 살아보면 어떨까?”
엔터테인먼트| 2014-06-12 10:51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SBS에서 ‘정글의 법칙’의 뒤를 이을 ‘도시의 법칙’이라는 새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고 했을 당시, 몇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연예인들의 대도시 생존기를 담는다는데, 왜 굳이 다른 나라의 대도시에 가서 생존을 담느냐는게 첫 번째였습니다. ‘콘크리트 정글’이 비단 뉴욕만은 아니지 않나요. 우리 역시 서울이든, 다른 어떤 곳이 됐든 각자의 도시에서 너무도 치열한 생존 경쟁 중이니까요.

프로그램 관계자를 만나 그 이유를 물었더니 도리어 질문을 던졌습니다.

“뉴욕 가서 살아보면 어떨까, 유럽 가서 살면 어떨까 그런 생각 안해보셨어요?”

“음, 안해봤는데요?”

“그 곳에서 집을 얻고, 옆집 사람과 교류하고 살면서 뉴요커로서의 일상을 살아보자는 생각이에요. 뉴욕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볼 수 있지만, 막상 가라고 하면 집은 어디에서 구하는지, 일자리는 어떻게 구하는지, 하루 생활비는 얼마가 드는지 모르잖아요.”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이민 지침서인가?, 자본의 도시 뉴욕의 민낯을 보자는 건가? 이민자의 비애를 다루겠다는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방송은 11일 시작됐습니다. 첫 방송인 탓에 사실 서론이 길었습니다. ‘도시의 법칙’의 기획의도와 향후 이야기를 무려 10분에 걸쳐 소개한 뒤에야, 멤버들의 첫 만남부터 뉴욕 입성기까지가 그려졌죠. 


배우 김성수 이천희 정경호 백진희 문(로열파일럿츠)이 주인공입니다. 다섯 명은 뉴욕에서의 3주 간의 생활에 설렘이 먼저 찾아왔나 봅니다. 백진희는 “소풍가기 전 날의 기분”이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프로그램을 연출한 이지원 PD는 ‘도시의 법칙’이 살아갈 첫 도시로 뉴욕을 선택한 건 이 도시가 가지는 ‘상징성’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전세계 금융의 심장, 자본이 움직이고 문화가 만들어지는 곳. 화려한 위용에 눈이 호화롭지만, 뒷골목 브루클린에선 총기 난사와 마약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죠.

‘뉴욕’을 찬양한 노래들에선 전 세계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뉴욕의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미국 음악계의 슈퍼스타 제이 지와 앨리샤 키스가 함께 한 ‘Empire State Of Mind’의 후렴구는 뉴욕에 첫 발을 디딘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줍니다. ‘꿈이 이뤄지는 콘크리트 정글, 그 곳에선 못할 게 없어. 지금 넌 뉴욕에 있으니까(Concrete jungle where dreams are made of/There’s nothing you can’t do/Now you‘re in New York)’. ‘아메리칸 드림’의 본산이죠. 이 노래에서 제이 지의 랩 부분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뉴욕 뉴욕‘에서 중요한 대목을 가져왔습니다. 시나트라의 노래중 ‘뉴욕에서 성공한다면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다(If I can make it there, I can make it anywhere)’는 내용이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이 몰려들지만, 그 만큼 살아남기 힘든 도시라는 겁니다. 생존은 곧 돈이 되는 거대 도시,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거세됐을 땐 지독하게 처절하고 참담한 삶을 살아가는 곳이죠. 뭐 서울이 됐든, 뉴욕이 됐든 그게 도시인의 삶이니까요.

뉴욕에 도착한 출연자들도 현실을 마주합니다. 스스로 살 집과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상황, 늘 누군가의 도움에 익숙했던 연예인들은 이제 모든 걸 알아서 해야합니다.

제작진은 가장 먼저 스마트폰과 현금, 현금의 대용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압수했습니다. 그렇다고 멤버들을 지독하게 괴롭히진 않았습니다. 일단 멤버들이 3주간 머물 생존지를 구해줬고, 취업비자가 없는 이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방송이라는 양해도 구하기로 했습니다. 차가운 바닥에 깔고 잘 수 있는 스티로폼도 챙겨줬습니다. 엄청 친절해진 제작진입니다. 다만 몇 가지 규칙을 세웠죠. 그 어떤 것도 공짜로 쓰지 않는다는 게 그 중 하나입니다.

어찌됐건 이들의 뉴욕생활은 시작됐습니다. 험난한 뉴욕 라이프는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도시의 법칙’은 일단 시청자들의 흥미를 끄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이들은 전 세계 금융의 심장 맨하튼의 높은 빌딩숲에 압도되고, 타임스퀘어 광장의 화려함에 넋을 놓았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을 멀리서나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사그라들지 않는 모습이었다. 비록 브루클린 공장지대에서 시작하게 된 뉴욕 라이프였고, “뉴욕에 와서 침낭에서 자게 될 줄은 몰랐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시청자들에겐 일단 귀여운 투정 정도로 보인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죠.

SNS엔 방송과 함께 “신선하다”는 반응부터 “가고 싶다”, “예능 보며 부럽다는 생각을 하는 건 처음”이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한 시청자는 “‘정글의 법칙’ 팀이 만들었다는 ‘도시의 법칙’. 뉴욕이라는 도시에 가서 일 구하고 생활해 나갈 그들. 정글이든 도시든 이런 TV쇼가 완전한 리얼은 아니지만 정글에서처럼 도시 사람 속에서 적응해 나가는 모습에서 어떤 생존의 법칙은 발견하게 될 듯하다”고 했습니다. 작은 변주가 큰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 뉴욕 생활의 경험이 있는 시청자들에겐 향수도 어렸습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매일같이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겼고 위기도 많이 왔는데, 그럴 때마다 기적처럼 따뜻한 손길이 이어졌다”는 반응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제작진이 궁극적으로 말하게 될 인간관계와 소통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반응이겠죠.

하지만 “대도시에서의 생존을 가장한 돈 많이 쓰는 예능”이라는 반응도 있습니다. 프로그램의 출발 자체에 대한 비판입니다. ‘도시의 법칙’은 돈 많이 드는 예능이 맞습니다. SBS가 야심차게 기획하는 ’법칙‘ 시리즈가 그렇죠. 두 세명 정도의 인력이 투입됐던 해외 특집물과 달리 대규모 인력이 총출동하는 ‘정글의 법칙’만 해도 회당 1억대의 제작비가 듭니다. 돈은 많이 들이고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방송사로선 막대한 손해가 되는 기획물입니다. 

‘도시의 법칙’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 프로그램 역시 성공한다면, 지지부진한 예능으로 골치를 앓던 이 방송사엔 돌파구가 될 것으로 비칩니다. 특히 김병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정글의 법칙’과 달리 예능 경험이 많지 않는 배우와 신인들의 조합으로 시너지가 보인다면 ‘도시의 법칙’은 예능 트렌드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SBS는 ‘도시의 법칙’의 시즌제를 예고했습니다. 뉴욕 생활의 시작을 보니, 가까운 나라 일본은 어떤 삶을 살까 궁금증이 들기도 했습니다. 문명이 사라진 정글과는 달리 도시라는 공간엔 그 나라만의 생활방식과 문화, 역사가 공존하기에 장소를 바꿔가는 ‘도시의 법칙’은 이야깃거리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 안엔 예능적 재미 못지 않게,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모습을 되돌아볼 시간이 충분히 담길 것으로 보입니다. 웃음과 적절한 위로, 탈출에 대한 로망이나 타국 생활의 동경,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도시의 얼굴이 두루 투영될 것이 기대되는 1회분이었습니다. 첫 방송 시청률은 5.4%(TNmS 기준)였습니다. 경쟁작 ’라디오스타(MBC)‘는 8.2%였네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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