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문화
네타냐후도 거친 ‘사이렛 매트칼’…이스라엘 정치 엘리트들의 산실
뉴스종합| 2014-07-16 11:32
1976년 7월 3일 아프리카 우간다 엔테베 공항. 이스라엘 로드 공항을 출발,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소속 AF-137기가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 테러범 2명과 독일계 혁명분파 테러범 2명에게 납치돼 254명의 승객이 인질로 잡혔다.

이스라엘은 즉각 대테러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Sayeret Matkal)을 출동시켜 도착 직후 단 1시간 반만에 테러범들을 진압하고 인질을 구출해냈다. 당시 작전을 이끌었던 이는 요나단 ‘요니’ 네타냐후 중령. 작전 중 전사한 그는 베냐민 네타냐후 현 이스라엘 총리의 형이다.

사상 최대의 대테러 인질 구출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사이렛 매트칼은 여러 인사들을 배출한 이스라엘 최고의 정예 엘리트부대다.

사이렛 매트칼에선 역대 총리들을 비롯해 국방장관 등 유수의 정치인들이 나왔다. 네타냐후 총리 역시 사이렛 매트칼 출신이다.

1967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네타냐후 총리는 1968년 ‘인페르노’(Inferno) 작전(요르단군과의 교전), ‘선물’(Gift) 작전(레바논의 이스라엘 침공)과 1972년 ‘동위원소’(Isotope) 작전(항공기 인질구출작전) 등에 투입됐으며 어깨에 총상을 입기도 했다.

전임 에후드 바락 총리 역시 이 부대 출신이다. 1959년부터 35년 간 이스라엘 방위군(IDF)에 몸담은 잔뼈가 굵은 군인으로 네타냐후 총리와 함께 동위원소 작전에 참가해 작전을 이끌었다. 1976년 엔테베 작전을 입안한 주요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전역 이후 총리 뿐만 아니라 국방장관, 외무장관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모세 얄론 현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사이렛 매트칼에 몸담았었다. 1973년 욤-키푸르 전투에 뛰어들기도 했던 그는 1982년 레바논 전쟁때 사이렛 매트칼 지휘관으로 부임했다. 당시 그는 레바논 헤즈볼라 추격을 이끌다 다리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후 IDF 참모총장을 거쳐 지난해 바락 전 총리에 이어 국방장관에 임명되는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밖에 IDF 참모총장, 교통부장관, 국방장관, 부총리 등을 역임한 샤울 모파즈,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의 수장으로 바락 전 총리의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던 대니 야톰, 작가이자 네타냐후 총리의 동생인 이도 네타냐후 등도 사이렛 매트칼 출신이다.

한편 이스라엘 역대 총리들 상당수는 시온주의자(유대교 민족주의자)로, 팔레스타인 강경책을 고수해왔다. 초대 총리인 데이비드 벤 구리온은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은 대표적인 시온주의자다. 그는 시온주의 집행위원회의 중추였다.

2대 총리인 모세 샤렛도 시온주의자였고 여성 정치가였던 골다 메이어 역시 시온주의자로 활동했다.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핍박을 받았던 메나헴 베긴 전 총리도 시온주의자로 이름을 남겼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사이렛 매트칼= ‘사이렛’은 히브리어로 ‘정찰대’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특수부대 앞에는 사이렛이라는 이름이 붙고, 이들 가운데 최정예부대가 바로 육군의 사이렛 매트칼이다. 상당기간 대원을 비밀리에 선발했으나 1980년대부터 지원자를 받기 시작했다. 엔테베 작전을 포함, 1964년 6일전쟁의 쉬라크락 작전, 1973년 욤-키푸르 전쟁, 사보이 작전, 1982년 레바논 전쟁 등 결정적인 순간, 결정적인 전투에 참가했다. 사이렛 매트칼 부대원이 되는 것은 이스라엘 사회의 특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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