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대통령의 휴가
뉴스종합| 2014-07-30 11:13
바캉스(vacan-ce)의 어원은 ‘텅 비우다’는 뜻의 바카씨오(vacatio)라는 라틴어다. 프랑스에 들어가 바캉스가 되더니 영국으로 건너 가 섹스피어의 비극 ‘햄릿(Hamlet)’에 vacation으로 쓰이면서 일반화됐다.

휴가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이들이 프랑스인들이다. 1년 꼬박 돈 벌어 한 달 휴가 가는 재미로 살다보니 출발 전에 애지중지하던 개,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기 일쑤다. 영국인들이 제멋대로인 휴가를 ‘프랑스 휴가’라고 하고, 이에 발끈한 프랑스인들이 형편없는 요리를 ‘영국요리’라고 하는 것도 결국 휴가로 생긴 시비다.

그런데 눈치안보고 휴가를 즐기는 이들은 정작 미국인들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그랬고, 백미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아무리 바빠도 쉴 땐 쉰다. 피격에 폭격에 지구촌이 난리 통인데 다음달 16일씩이나 미 동부 단골 휴양지로 가족과 떠난다. 까맣던 머리가 몇 년 새 하얗게 변해도 늘 웃는 것은 휴가를 앞둔 때문이라는 우스개도 들린다. 


삼복더위로 여름휴가가 절정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28일부터 닷새 동안 휴가다. 그런데 올해는 휴가 내내 청와대 경내에만 머물겠다고 한다. 지난해 취임 후 첫 여름휴가는 경남 거제시 ‘저도’에서 보냈다. 그 곳 모래밭에 ‘저도의 추억’이란 글씨를 쓰며 10대 소녀시절 가족과 함께했던 바캉스를 회상했던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박 대통령은 30일 “힘들고 길었던 시간들… 휴가를 떠나기에 마음에 여유로움이 찾아들지 않는 것은…”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리고는 밀린 일들을 할 것이라고 했다.

참모들은 또 어떤 상황일까.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법인데 염천(炎天)아래 청와대가 안타깝다. 이는 국가와 국민, 그리고 경제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의 휴가는 국정의 윤활유다. 

황해창 선임기자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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