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소리의 마녀, 젊은 친구들의 ‘나무’ 가 되다
엔터테인먼트| 2014-09-12 11:15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한영애는 이름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이자 브랜드다. 여성 가수가 거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던 8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는 흉내조차 불가능한 개성적인 목소리로 자신 만의 영역을 확보해 온 개척자였다. 한영애는 포크, 록, 블루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경지에 다다랐다는 표현 외엔 수식하기 어려운 가창력으로 무대를 장악하며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여성 가수들의 등장에 교두보를 놓았다. 지금도 한영애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할만한 여성 가수들을 꼽기 어려운 현실은 그가 대중음악계에서 얼마나 독보적인 존재인가를 가늠케 한다. 무엇보다도 한영애의 목소리에서 특별한 점은 허허바다를 닮은 자유로움이다. 그는 열창하되 결코 과시하지 않았고, 거침없이 무대를 오가되 품위를 지켰다. 한영애의 오랜 별명 ‘소리의 마녀’는 그를 향한 팬들의 애정과 경외감으로 빚어낸 훈장이다. ‘여신’은 많아도 ‘마녀’는 한영애 뿐이다.

조금은 신비로운 이미지 속에 둘러싸여 있던 한영애는 지난 2012년 MBC ‘일밤-나는 가수다2’ 출연을 시작으로 대중친화적인 행보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다양한 콘셉트의 공연을 통해 대중과의 거리를 좁혀나갔지만, 새 앨범 소식에 갈증을 느끼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던 한영애가 불쑥 오는 11월 오랜 만에 신곡을 담은 정규 6집을 발매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한영애의 정규 앨범 발매는 지난 1999년 정규 5집 ‘난다’ 이후 무려 15년 만이다. 새 앨범 작업에 한창인 한영애를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명륜2가에 자리 잡은 연습실에서 만났다.

‘마녀’한영애가 목제 대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서며 대중에게 눈짓으로 인사한다. 15년 만에 새 앨범을 내는 데는 그에게도 용기가 필요했다. 마녀에게도 두려움은 있었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 “새 앨범, 세대 아우른 축제의 장 될 것”= 한영애는 지난해 12월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소극장에서 벌인 성탄절 콘서트 ‘메리 블루스 마스(Merry Blue’s Mas)’ 이후 특별한 대외활동 없이 2014년 상반기를 보냈다. 한영애는 “구체적인 시기를 밝히지 않았을 뿐, 늘 앨범 준비를 해왔다”며 상기된 표정으로 새로운 앨범에 대한 운을 띄웠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저는 늘 규칙적으로 연습실에 오가는 일상을 보내왔어요. 다만 긴 시간 동안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응원 덕분이죠. 이번 앨범의 콘셉트는 ‘축제’입니다. 지금도 많은 부분을 조율 중이라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지만 세대를 아우르는 많은 뮤지션들이 참여해 종합선물세트 같은 다채로운 앨범이 만들어질 겁니다. 좋은 음악과 사운드가 담길 거예요.”

한영애는 앨범 발매에 앞서 지난 8월 절판된 라이브 앨범 ‘아.우.성’과 정규 4집 ‘불어오라 바람아’를 재발매했다. 지난 1993년 1월 31일 한영애가 서울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가진 콘서트 실황을 담은 ‘아.우.성’은 수준 높은 완성도로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손꼽히는 라이브 앨범이다. 이정선(기타), 정원영(피아노), 이병우(기타), 송홍섭(베이스), 김광민(피아노) 등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이 참여한 정규 4집은 한영애가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가수를 넘어 아티스트의 반열로 올라설 수 있게 만든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얼마나 많이 팔리느냐와 상관없이 앨범은 가수를 대표합니다. 가수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정작 앨범은 발매된 지 오래돼 구하기 어려운 현실이 갑갑하더군요. 가수가 활동하는 것처럼 노래도 활동할 수 있게 생명력을 주고 싶어 앨범 재발매와 음원 유통을 결심했죠. 노래는 가수의 것이지만 발표하는 순간부터 대중의 것이기도 하므로 나눠야합니다. 행복을 위해 공유하는 거죠.”

한영애는 6집 발매 이후 다음 앨범 발매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가 활동기간에 비해 과작(寡作)이었음을 감안하면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번 앨범은 제가 판을 깔고 그 판 위에서 많은 뮤지션들과 함께 노는 축제의 자리이니, 다음 앨범에는 제 음악을 해야죠. 발매시기를 확답할 순 없지만 빠른 시일 내에 선보이고 싶어요. 주변에서 많은 좋은 음악을 추천 받고 있습니다.” 


▶ “데뷔 40주년? No! Since 1976!”= 70년대 중반 신촌 한 카페에 ‘이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입소문을 탔던 한영애는 1976년 그룹 해바라기에 합류하며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내년에 데뷔 40주년을 맞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영애는 손사래를 쳤다. 무대 위에서 허물없이 20대 젊은 세션들과 함께 호흡하는 그다운 반응이었다. 한영애는 1976년부터 노래를 불러왔다는 의미를 담은 영어 ‘신스(Since) 1976’이라는 표현으로 데뷔 40주년이라는 말을 대신했다.

“연극 활동 기간을 포함해 음악과 관계없이 보낸 이런 저런 시간들을 빼면, 제가 노래를 부른 세월은 20년 남짓에 불과해요. 그런 세월을 감안하지 않고 단순하게 맨 처음 노래를 부른 시기를 데뷔년도로 삼는 것은 조금 부당하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1976년부터 노래를 불러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으니 가장 적당한 표현은 ‘신스 1976’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해바라기 활동도 잠시, 한영애는 1977년부터 1983년까지 극단 ‘자유극장’의 배우로 7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이 시절 한영애는 철저히 음악을 놓은 채 연기에 몰입했다. 1977년 ‘더치 맨’ 조연을 거친 그는 1978년 ‘영원한 디올라’에선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그러던 한영애를 다시 음악의 길로 인도한 것은 기타리스트 이정선의 한마디였다.

“당시 저는 무대 위에서 록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는데 해바라기는 포크 그룹이어서 불가능했어요. 답답함을 느끼던 와중에 우연히 소개를 통해 연극을 접하게 됐는데, 맨발로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보고 단숨에 매료됐죠.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가 느껴지더군요. 저는 특출한 배우가 아닌데다, 저보다 잘하는 배우들도 많았어요. 방황하던 제게 해바라기에서 함께 음악을 했던 이정선 씨가 “노래를 해야 할 사람이 왜 거기에 있느냐?”고 말하더군요. 그때 저는 처음으로 직업관을 갖게 됐습니다. 노력해서 가능하다면 평생 무대 위에 설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결심했죠.”

다시 가요계로 돌아온 한영애는 1986년 1집 ‘여울목’을 발표해 ‘건널 수 없는 강’, 1988년 2집 ‘바라본다’를 발표해 ‘누구 없소’를 히트시키며 대중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각인시켰다. 특히 2집은 지난 2007년 모 일간지 선정 100대 명반에도 이름을 올리며 음악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저는 팔리기 위해서 음악을 해본 적이 없어요. ‘건널 수 없는 강’과 ‘누구 없소’도 결코 히트를 예상한 곡이 아니었고요. 저는 좋은 노래를 부르고 앨범에 담고 싶어요. 가사와 멜로디, 연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듣는 사람이 불안을 느끼지 않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 다가서기 어려웠던 ‘마녀’서 친근한 ‘나무’로= 한영애와 가까운 지인들은 그를 ‘나무님’이라고 부른다. 스스럼없이 그를 ‘나무님’이라고 부르며 다가오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미소로 화답하는 그에게서 무대 위 ‘마녀’의 모습을 짐작하긴 쉽지 않다.

“나무를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나요? 땅속 깊이 뿌리 박혀 있어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바람이 불면 흔들리며 자연에 순응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나요? 저는 무대 위에서 선생님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젊은 연주자들이 저를 상대해주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기쁩니다. 저는 그들을 진정으로 친구처럼 대하려고 노력해요. 제가 제 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꽤 성숙했었거든요. 지금도 저는 노래를 부를 때 당시의 기억과 정서를 많이 활용합니다. 그들도 저와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꼭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에요. 저도 그들에게서 배우는 게 참 많거든요. 그들 또한 제 평소의 모습에서 가랑비에 젖어들 듯 느끼는 게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영애는 인터뷰 내내 청년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취업난과 불안정한 일자리로 의기소침해 있는 청년들에게 한영애는 스스로를 신뢰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라는 조언이 더디고 무지한 말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사는 것은 자신이지 남들이 대신 살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어쩔 수 없다는 체념 대신 변화를 위한 의지를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면, 세상도 결국 긍정적으로 변화하지 않을까요?”

한영애는 오는 12월 앨범 발매 콘서트를 벌일 계획이다. 올해 들어 첫 콘서트다. 한영애는 이 콘서트를 전국 투어로 확장해 내년까지 이어 갈 계획이다.

“12월 콘서트는 축제 전야제 성격의 자리가 될 겁니다. 제겐 소리를 지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요. 이제 멀리 있는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부르는 대신, 제가 직접 그들에게 다가갈 생각입니다. 가장 서고 싶은 무대 중 하나는 대학교 축제입니다. 저는 그들과 얼마든지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저는 무대를 거울삼아 제 자신을 바라봅니다.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공연장에서 함께 하시죠.”

한영애가 걸어온 길

* 서울예술전문대학 졸업
* 1976년 그룹 해바라기 멤버로 참여하며 가요계 데뷔
* 1977~1983년 극단 ‘자유극장’서 배우 활동
* 1986년 정규 1집 ‘여울목’ 발매
* 1988년 정규 2집 ‘바라본다’ 발매
* 1992년 정규 3집 ‘한영애 1992’ 발매
* 1993년 공연실황 앨범 ‘아.우.성’ 발매
* 1995년 정규 4집 ‘불어오라 바람아’ 발매
* 1998년 대중음악전문지 서브(SUB) 선정 ‘한국대중음악사 100대 명반’  2ㆍ4집 각각 33ㆍ48위 선정
* 1999년 정규 5집 ‘난.다’ 발매
* 2003년 앨범 ‘Behind Time’ 발매
* 2007년 경향신문ㆍ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2집 19위 선정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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