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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치-하이라이프] 명품 콘텐츠 · 플랫폼…미술계 쥐락펴락 ‘슈퍼파워’ 사모님들
뉴스종합| 2014-10-10 11:34
이인희-뮤지엄 산, 박강자-금호미술관 등
대부분 모기업 후원 ‘재벌가 미술관’ 건립
변함없는 예술사랑…미술계 발전 큰 기여


[특별취재팀] 슈퍼리치들이 다년 간 수집해 구성한 미술품 컬렉션은 그들의 재력 뿐만 아니라 예술을 바라보는 안목까지 보여준다. 대부분 모기업의 후원을 받아 지어진 미술관을 통해 자신들이 수집한 미술품들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한다. 재벌가 미술관인 만큼 대중의 관심도 높다. 우수한 콘텐츠(미술품)와 플랫폼(미술관)을 모두 갖춘 이들은 국내 미술계의 흐름도 주도해왔다. 예술계를 주름잡은 재계의 슈퍼컬렉터들을 알아봤다.

▶ 재벌가 1세대 여성 컬렉터 한솔 이인희ㆍSK 고(故) 박계희=이인희 한솔그룹 고문(87)은 재벌가의 대표적인 미술 애호가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녀인 그는 이 회장의 미술품 수집 취미를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고문의 컬렉션은 작년 5월 강원도 원주에 문을 연 ‘뮤지엄 산(구 한솔뮤지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발 275m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개관 전부터 화제가 됐다. 또 세계적인 ‘빛의 작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겐지스필드, 웨지워크, 호라이즌, 스카이스페이스)이 아시아 최초로 4개나 설치돼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야외에는 골프 코스를 따라 국내 작가 최만린과 영국 작가 헨리 무어의 조각품이 설치돼 있는 등 오랜 기간 미술품을 수집해 온 이 고문의 역량이 집중된 곳이다. 


고 최종현 전 SK 회장의 부인이자 워커힐 미술관의 관장이었던 고 박계희 여사 역시 생전에 손꼽히는 미술품 컬렉터였다. 미국 미시간주 카라마주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1984년 워커힐미술관을 설립하고, 국내 최초로 앤디 워홀전(展)을 열어 주목 받았다. 또 피카소와 호펜하임 등의 작품을 전시하고 신진 작가 발굴에 앞장서는 등 미술계에서 영향력이 컸던 인물이다. 1997년 타계한 후 그의 미술 사랑은 며느리 노소영 씨(54)가 이어받았다. 서울대 공대 출신인 노 씨는 2000년 아트센터 나비를 개관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뛰어들었다. 시어머니가 회화 작품에 관심을 가졌다면 노 씨는 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디지털 아트 분야에 높은 수준을 지니고 있다. 미술관 곳곳에도 다양한 디지털 아트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아트센터 나비 설립 당시 이 분야 전문가를 찾을 수 없어 본인이 직접 맡아서 하다 보니 지금의 수준에 이르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 미술계 ‘슈퍼 파워’ 삼성 이건희ㆍ홍라희 부부=삼성은 리움을 비롯해 호암미술관, 플라토(구 로댕갤러리)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70)가 이들 미술관의 관장을 맡고 있다. 호암미술관은 고 이병철 회장이 수집한 고미술품을 공개하기 위해 1982년 개관했다.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리움은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뛰어난 디자인을 자랑한다. 설계 및 디자인은 건축계 3대 거장 스위스의 마리오 보타, 프랑스의 장 누벨, 네덜란드의 렘 콜하스가 맡아 화제가 됐다. 홍 관장은 2005년 미술 전문지 ‘아트프라이스’가 작가, 평론가, 화랑주, 미술기자 등 23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파워 리더 1위로 뽑히기도 했다. 국내외 우수 작가의 전시를 유치하고 미술품 수집을 활발하게 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서울대에서 응용미술학을 전공한 홍라희 관장은 1983년 현대미술관회 이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대외 활동을 시작한 바 있다. 최근 이건희 회장이 입원한 후 외부 행사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홍 관장이 지난 달 2일, 4개월 만에 나선 공식 행사도 리움에서 열린 미술행사였다. 


박강자 금호미술관 관장도 유명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금호미술관은 박인천 창업주의 차녀이자 박삼구 회장의 누나인 박강자 관장(64)이 이끌고 있다. 1989년 개관 이래 박 관장은 금호가 벌이는 문화사업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지역 작가들과 신진 작가들을 중점적으로 후원하는 점이 박 관장의 소신이자 금호미술관 고유의 특징이다. 지난 해에는 국내 미술계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 모기업 몰락 불구 변함없는 미술사랑=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 정희자 씨(75)는 아트선재센터 관장을 맡아 지금까지 미술관을 운영해오고 있다. ‘선재’는 1990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아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2011년 정 관장의 고향 경주에 있던 경주 선재미술관이 매각되면서 아트선재센터만이 대우가(家)의 유일한 미술관으로 남았다. 정 관장은 과거 대우그룹이 전 세계 호텔 건설에 활발하게 나설 때 그곳에 필요한 그림을 고르면서 자연스레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양대 건축학과 졸업 후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그는 1976년 37세의 나이에 하버드대에 진학해 동양미술사를 공부하는 등 대우그룹의 예술경영을 안팎으로 도왔다. 2012년 프랑스 명품 브랜드 몽블랑이 문화예술 분야 발전에 기여한 인사에게 수여하는 ‘제21회 몽블랑 후원자상’의 첫 한국 여성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뒤늦게 그의 공헌이 인정받기도 했다.


쌍용그룹 창업주 고 김성곤 회장의 호를 따 1995년 설립된 성곡미술관은 현재 쌍용그룹 김석원 전 회장의 부인 박문순 씨(61)가 관장을 맡고 있다. 김성곤 창업주의 자택을 개조해 만들었으며 본관과 별관으로 이뤄진 전시공간 외에도 외부에 조각공원과 숲이 조성돼 있어 관람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쌍용그룹의 위세는 약해졌지만 성곡미술관은 자체적으로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등 예술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교수에서 공예가로 변신한 김성곤 회장의 장녀 김인숙 씨(75)가 이곳에서 구슬공예품 전시회를 여는 등 쌍용가(家) 여성들이 중심이 돼 예술사업의 명맥을 이으려 노력하고 있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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