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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속의 한국, 한국 속의 태국
라이프| 2014-12-23 09:46
[방콕=정병희 한국관광공사 지사장, 정리=함영훈 기자] 태국 수도 방콕의 짜오프라야강 어귀에는 이 도시의 상징물인 왓아룬(Wat Arun)이 우뚝 서 방콕 전체를 호위하고 있다. 왕실의 전용 사원인 이 성전이 갖는 의미는 태국 말로 ‘아루나’ 즉 ‘새벽’이다. 태국인들은 새벽을 중시하면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아침의 나라’라고 불리던 한국, 그리고 한국민의 기질과 통하는 대목이다.

“픙 마짝 까올리.”

요즘 태국에서 흔히 듣는 인사말이다. ‘한국에서 막 왔어요’라는 뜻이다. 한반도의 2.5배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에 왓아룬, 타이 왕궁, 아시아 티크, 짜뚜짝 주말시장이 있는 방콕, 세계적인 휴양지인 파타야,푸켓에다 옵루앙국립공원이 있는 치앙마이를 비롯해 경제, 관광의 명소와 유적이 많고, 다양한 문화적 전통이 살아 숨쉬는 태국인데, 요즘 이곳에 ‘한국’이 다방면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다.

▶태국 방콕의 상징물 왓 아룬(Wat Arun)은 새벽사원이라는 뜻이다. 동방의 아침이라는 한국의 이미지와 닿는다. [이미지 출처=123RF]

우리가 실제 태국을 방문해 다양한 장점을 목격하거나 체험해 보고 나서야 ‘발전하는 신흥국’ 이상의 내공이 있는 나라임을 느낄 수 있듯이, 그들도 우리에게서 좋은 영감을 받고 있는 듯 하다. 한류(韓流)의 영향도 컸지만, 올들어 11월까지 우리는 태국으로 100만명이 가고 태국인들은 한국에 40만명이 오는 등 양국 교류가 매년 두 자릿 수 성장을 기록하는 점은 문화적 교집합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태국 속의 한국=동남아시아 중심 교차로인 태국에는 지금 음식, 의류, 화장품 등을 비롯해 엔터테인먼트까지 한국의 이미지를 앞세운 마케팅이 다방면에서 활용되는 추세다. 한국인보다 태국인들이 ‘한국적인 것의 강점’을 더 적절히 활용하기에 이채롭다.

태국인들은 뜻은 잘 모를지라도, 한국에서 온 의류 등 신제품에 한글이 있으면 더욱 좋아한다. 한번은 방콕 한복판에 있는 태국 상점에서 ‘고맙합니다’(감사합니다의 오기)란 한글 문구를 본 적도 있다. 자동번역기를 이용했을 법한 이 문구를 보고 실소 대신 반가움이 먼저 앞섰다. ‘한국 콘셉’을 활용하려는 성의가 고맙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태국인들의 한국이미지 마케팅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2000년 대 초반부터 시작된 태국 한류가 이젠 태국인에 의해 증폭되고 저절로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김주(Kimju)’라는 한국식당이 있다. 방콕을 비롯해 28곳에 이르는 매장을 가진 태국 최대의 한식 프랜차이즈다. 얼핏 보면 구레나룻을 기른 구수한 이미지의 김씨 성을 가진 ‘한국인 아저씨’가 주인일 것 같지만, 사장은 토종 태국인이다. 2007년에 1호점을 낸 이래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곳에선 짜장면과 비빔밥, 떡볶이를 함께 팔고 있어, 우리가 볼 땐 좀 ‘이색적인 한국식당’이다. 허나 이런 ‘한국맛’을 앞세운 이곳엔 태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류가 몰고온 ‘흥겨움’과 열정의 동류 의식=그 이면엔 한류가 있다. 창업한 이듬해부터 2년 동안 태국 공중파 TV에선 총 86개의 한국드라마가 방송됐다. 한류를 활용한 마케팅이 먹힌 이유였다. 게다가 개업초기 알쏭달쏭하던 이곳의 음식 맛도 이젠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 태국 편의점에서 잘 팔리는 것 중엔 ‘마시따(Masita)’라는 과자가 있다. 한국에서 들어온 김이 반찬이 아닌 태국인의 입맛에 맞는 과자로 둔갑한 제품으로, 과자 봉지에는 ‘맛있다’라는 한글이 선명하다. 제품모델은 K팝 가수인 슈퍼주니어고, 사장은 태국인 젊은이인데, 한국 연예인 팬 미팅, 콘서트 등에 단골 후원업체로 나서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왔다’는 이미지를 이어가려는 의도이다.

요즘 태국 방콕 시내 중심가에 태국인들이 길게 줄을 서는 ‘닭갈비’ 집도 태국 청년 4명이 창업했다. 넷이 함께 한국에 여행 갔다가 춘천에서 먹은 닭갈비에 반해 차렸다고 한다. 방콕 백화점 요지마다 자리 잡은 이 레스토랑은 창업 2년 만에 매장이 6개로 늘어났다.

태국에서 이렇게 음식 맛에 한국이미지를 활용하는 전략은 2000년대 초반 ‘대장금’이 유행할 때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당시의 피자집 전단지를 보면 태극기가 그려져 있고, 한복을 입은 코믹한 태국모델이 볼이 터져라 피자를 물고 있다.

태국인 특유의 열정과 흥겨움은 한국을 닮았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양국 교류의 역사가 고려말부터 700년을 넘는다고는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때 우리를 도왔던 시점까지는 이렇다 할 문화적 소통이 없었음에도 양국이 단숨에 동질감을 확인하는 것은 타고난 DNA의 유사성 때문일 것이다. 열정의 나라끼리 맞붙는 한-태 축구 경기는 역동성과 거친 태클, 열광적 응원이 늘 함께 했었다.

▶한국속의 태국=엔터테인먼트계에서도 한국을 잘 엮으면 절반은 성공이다. 연예인 중에선 ‘2PM’의 닉쿤에 이어 ‘God7’의 뱀뱀, ‘타이니지’의 민트 등 태국계 K팝 스타들이 속속 K팝 무대를 장악해 나가고 있다. 이들은 태국 광고계가 선호하는 가수들이다.

▶그룹 2PM의 태국 출신 닉쿤 [이미지=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타이니지의 태국출신 민트 [이미지= 지앤지프로덕션 제공]
▶그룹 갓세븐의 태국출신 뱀뱀 [이미지=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뿐 만 아니라, 나튜(Nathew), 비(Bie) 등 태국의 인기스타들 사이에서 한국 현지 K팝 트레이닝을 받는 게 유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 굴지의 기획사에서 트레이닝 받고 데뷔를 앞둔 태국 출신 훈련생만 1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연예계는 언제부터인가 태국 청소년들에겐 희망의 땅이 됐다.

방송 영상분야에서도 ‘한국 촬영’ 후광이 있다. 2010년 태국에서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한 영화 ‘헬로 스트레인저(Hello Stranger’는 한국 올로케 태국영화라는 마케팅 슬로건이 먹혔다. 덩달아 방한 태국인이 25%대 성장률로 크게 늘어난 것은 물론이다.

▶태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던 ‘헬로스트레인저’는 한국에서 올로케했으며 신혼부부의 한국적응기를 코믹하게 다뤘다. [영화 공식 포스터]

지난해 태국에서 큰 인기를 끈 ‘풀하우스’는 한국원작을 토대로 ‘태국인에 의해, 태국인을 위해, 한국에서 촬영’한 드라마였다. 태국인이 리메이크한 한국드라마가 태국 주변 10여국에 재판매됐으니 한국홍보가 저절로 된 셈이 됐다.

태국 음식에 대한 한국인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서울 등 수도권에만 해도 태국음식 전문점과 체인점이 강남, 이태원, 명동, 여의도, 인천 신포동, 대전 둔산동 등 수백개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타문화에 대한 태국의 포용력=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전세계 10억 뷰를 돌파했을 때 이를 가장 많이 본 사람들은 미국인이었고, 2위는 태국인이었다. 그만큼 태국은 SNS의 사용과 전파, 유행이 대단히 빠른 곳이다. 이런 태국에서 한류가 10년 가까이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콘텐츠가 우수하다는 점, 태국인들이 쉽게 동화(同化)할 만한 특성의 콘텐츠라는 점을 말해준다.

▶태국의 운동선수들이 경기에 앞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춤추고 있다. [이미지 출처=123RF]

주목할 점은 한국 문화의 유입이 지속되고 있지만, 태국인 어느 누구도 이를 경계하거나 자국 문화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류가 태국에 손해를 끼친 게 없으며, 태국문화는 태국 문화대로 자신감이 있다’고 말한다. 그 동안 태국은 일본이든 미국이든 외부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취해 왔다. 한 마디로 우수한 콘텐츠가 차별 없이 대접받는 곳이라는 뜻이다.

올해부터 태국도 본격적인 디지털TV 시대를 맞았다. 이미 디지털 시대로 진입한 한국의 영상 콘텐츠가 또 다른 주목을 받고 있음은 물론이다. 올해 중반 이후 태국이 사회적 안정을 되찾으면서 경기성장과 소비심리 회복도 기대된다. 한국 콘셉의 마케팅이 곳곳에서 더 활발해질 여지가 많다. ‘한국에서 막 왔다’란 말도 더욱 자주 들릴 것 같다. 

/bhjung@knt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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