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가 22일(현지시간) 발표한 양적 완화는 국채는 물론 민간채권까지 무제한에 가깝게 매입하는 내용이 골자다. 엄청난 양의 유로화를 시장에 푼다는 뜻이다. 우리 시장에 전혀 다른 영향을 준 미국의 양적 완화와 일본의 아베노믹스의 유럽 버전이라 할 만하다.
2009년부터 이뤄진 미국의 양적 완화는 우리 산업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달러 약세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 정책으로 원/달러 환율은 줄곧 달러당 1050원 이상을 유지했다. 덕분에 전자와 자동차 등 우리 제조업은 비교우위를 지켜 미국 경기회복의 수혜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2012년부터 시행된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전혀 다른 영향을 미쳤다. 엔화 약세가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일본의 수출 경쟁력이 급속도로 회복됐다. 2012년 말 1달러당 77.88엔 수준이던 /엔/달러 환율은 지난 해말 119.38엔까지 치솟았다. 이 기간 원/달러 환율은 1147원에서 1104원으로 오히려 떨어진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올 해 우리 주요 수출기업들의 실적부진으로 이어졌다.
지난 연말 달러/유로 환율은 1유로당 1.2328달러 수준이다. 미국의 양적 완화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2009년 2월의 1.2803달러,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시작되기 전인 2011년 말의 1.317달러보다 각각 3.8%, 6.8% 가치가 떨어졌다. 엔화약세에 비하면 극도로 제한된 환율하락이다. 공격적인 양적 완화는 이 같은 미약했던 유로 약세 추세를 강하게 만들어 유로존 국가들의 수출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유로존 국가들은 우리나라와의 무역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의 대 EU(유럽연합) 무역수지는 2004년과 2013년 단 두 차례만 흑자였고, 나머지 8차례는 모두 적자다. 특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독일 등 유럽산 수입차와 고가 소비재 등의 수입이 급증하는 모습이다.
재계 관계자는 “ECB의 양적 완화가 유럽 경기를 회복시켜 소비증가로 이어진다면 분명 우리 산업과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경기회복을 이끄는 과정에서 유로화 약세를 앞세운 유럽 제품들이 국내 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제품을 위협할 가능성이 커 엔저에 이은 또 다른 장애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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