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해준 기자]여당 지도부가 박근혜 정부의 핵심 기조인 ‘증세 없는 복지’에 잇따라 문제를 제기하며 증세론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해당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곤혹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세법 개정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주목된다.
정부는 경기가 위축된 상태에서 법인세 등을 올린다면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특히 최근엔 국민들의 조세저항이 심한 상태여서 증세 논의를 공론화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여당 새 지도부의 요구를 외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증세 없는 복지’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만큼 근본 정책기조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증세든 복지축소든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청와대와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쏟아지는 새 여권 지도부의 증세론=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3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부의 핵심 정책기조인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런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낮은 복지수준을 수용하는 ‘저부담 저복지’로 갈 것인지, 세금을 더 내고 복지수준을 높이는 ‘고부담 고복지’로 갈 것인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박근혜 정부의 정책기조인 ‘증세 없는 복지’의 수정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했다.
유승민 신임 원내대표도 이날 K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면서 “증세를 하지 않으려면 현재 수준으로 복지를 동결하든지, 어려운 분들을 위해 복지를 더 하려면 결국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유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2일에도 “현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라고 한 기조를 바꿀 필요가 있고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도 “법인세, 소득세도 백지에서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며 재검토 필요성을 밝혔다.
앞서 나성린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지난달 29일 열린 토론회에서 “박근혜식 증세가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면서 “어떻게 증세를 할지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고 법인세도 조금 인상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해 증세론을 제기했다.
▶청와대 입장 변화 없으면 혼란만 반복=이처럼 여권 내부에서 증세론이 터져나오자 기재부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기재부는 증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인천 송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연말정산 환급과 관련한 과도한 걱정 때문에 증세 논의가 불거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법인세에 대해서도 “법인세를 세계적으로 낮춰가는 상황인데, 나 홀로 인상했을 경우 부작용이 예상된다”고 밝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여당의 집권여당 ‘비주류 투톱’인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가 ‘증세 없는 복지’의 수정을 들고나와 증세 논의를 피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원만한 정책조율에 실패할 경우 여권 내부의 파열음으로 국민적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청와대의 ‘증세 없는 복지’ 기조가 변화하지 않는 한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욱이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요구에 정부가 휘둘릴 경우 정책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표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현실적으로 증세를 통해 복지를 확대하거나, 증세를 하지 않고 복지도 줄이는 방법이 있으나, 두 가지 모두 어려움이 있다. 이번 연말정산 파동에서 보듯 국민들은 증세에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복지를 줄이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한 경제전문가는 “정치권은 인기나 표에 영합하는 성향을 갖기 때문에 정치권에 휘둘려서는 안된다”며 “정부가 대국민 설득을 해가면서 주도해야 하는데 그 매듭을 풀어야 할 곳은 청와대”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지금은 대내외적인 경제여건이 불안한 상황에서 장기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하는 위기국면”이라고 진단하고 “정부도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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