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논설위원칼럼
[월요광장-성기숙]프랑스 무용한류
뉴스종합| 2015-02-09 11:21

지금으로부터 80여년 전 조선의 무용가 조택원은 파리 근교 퐁텐블로 숲을 거닐고 있었다. 이곳은 바르비종파의 화가 밀레의 명작  ‘만종(晩鐘)’이 잉태된 고장으로 유명하다. 밀레의 고장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은 조택원은 그림 ‘만종’을 모티브로 동명의 무용작품을 안무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에 대지적 감성이 묻어나는 조택원의 ‘만종’은 종교적 엄숙미와 노동의 신성함이 담지된 기념비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조택원은 1937년 11월 하루나마루호를 타고 예술의 본고장 프랑스로 향했다. 그 이듬해 뮤제 기메 박물관에서 동양인으로서는 드물게 공연하는 행운을 누린다. 당시 파리의 유일한 무용평론가였던 페르느 와 디보는 조택원에 대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위대한 예술가”라고 극찬했다. 또 파리오페라발레단 예술감독 세르쥬 리파는 조택원의 ‘가사호접’을 접하고 이국적 전통의 내면에 깃든 심오한 철학에 깊이 매료된다. 후일 두 사람은 도쿄에서 함께 공연무대를 갖는 등 각별한 친분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진다.

식민지 조선 출신 조택원은 프랑스 공연에서‘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를 표방하면서 자신의 정체성 구현에 헌신했다. 프랑스 문무성과 유네스코 후원으로 전국 200여개 도시를 순회공연했으며 그의 무용을 본 관객이 100만 명에 달한다는 기록도 있다. 매 공연마다 5만 프랑에 달하는 개런티를 받았다는 사실은 실로 놀랍다. 한류 열풍의 선두주자라는 평가가 전혀 낯설지 않다.

프랑스 무용한류를 주도한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활동여정도 흥미롭다. 그는 1939년 기획사 오가니제이션 아티스틱 인터내셔널을 앞세워 파리에 성공적으로 입성한다. 국립샤이오극장, 상프레지엘극장 무대에 오르며 예술의 본고장 유럽의 심장부를 겨냥한다. 타고난 재능과 동양적 감수성으로 까다롭기로 유명한 파리 관객의 심미안을 자극해 명성을 쌓는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휘가로’는 ‘조각적인 선과 경이적인 손놀림으로 동양의 환상을 심어줬다’고 호평했다. 피카소, 마티스, 장 콕토 등 최고의 예술가들이 최승희와 교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단숨에 ‘동양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무용가’로 등극했다.   

프랑스 무용한류를 반추할 때 발레리노 김용걸은 단연 돋보이는 무용가다. 그는 동양인 최초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하는 쾌거를 이뤘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은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영국 로열발레단과 더불어 세계 3대 발레단으로서 위상이 높다. 27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4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한 김용걸은 5년 만에 솔리스트 자리를 꿰찼다. 동양인 단원이 한 사람도 없던 시절에 이뤄낸 성과라 더욱 값지다.

김용걸의 바톤을 이어받는 박세은의 브랜드 가치도 예사롭지 않다. 그는 2012년 파리오페라발레단 정단원으로 입단하는 기염을 토했다. 세계 유수의 발레경연대회를 휩쓴 ‘콩쿠르의 여왕’답다. 작년엔 동양인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전막발레 주역으로 뽑혔다. 순혈주의적 전통을 중시하는 프랑스의 완고한 예술풍토에서 이뤄낸 결실이기에 더욱 소중한 것 아닐까.

양국의 합작 안무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2006년 프랑스 안무가 카롤린 칼송과 한국무용가 김매자의 협업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두 사람이 공동 안무한 ‘느린 달’은 서울과 파리에서 교차 공연됐다. 프랑스 평단은 ‘공기와 물의 화합’이라며 크게 환호했다. 카롤린 칼송이 서양인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구현한 반면, 김매자는 샤마니즘 전통에 기원된 제의적 공연미학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무용으로 맺어진 한국과 프랑스의 인연은 이처럼 긴 역사를 자랑한다. 무용한류의 물결을 세계에 전파하는데 프랑스는 중요한 교두보이자 건너뛸 수 없는 정거장이라할 수 있다. 한국과 프랑스 정부는 2015~16년을 ‘한불 상호 교류의 해’로 선포하고 양국의 상호 이해 증진과 교류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다양한 행사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프랑스 무용한류의 지난 여정을 반추하면서 양국의 미래를 전망하는 창의적 행사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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