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대학가에 따르면 최근 극심한 취업난 속에 각종 취업 관련 스터디가 늘어나고 있지만 취업과 관련 없는 순수 학술 동아리, 인문학ㆍ사회과학 학회 등은 고사 위기에 처해있다.
연세대 문과대학 학회인 ‘우리말연구회’에서 몇해 전 학회장을 지낸 김민지(24ㆍ여) 씨는 “15학번 신입생이 학회에 들어오지 않고 선배들 중에서도 참여 의지를 보인 사람이 없어서 올해 학회 활동 계획이 없다고 들었다”며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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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대란으로 대학가에서도 전통의 ‘학회’가 점점 사라지고 취업 관련 ‘스터디’만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2일 서울의 한 대학 학생회관 주변에 채용관련 현수막들이 나붙어 있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
순수 학회인 우리말연구회는 음운론 형태론 등 국어학 분야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학회로 김 씨 활동 당시엔 사투리탐사를 하러 학회원들이 지방에 내려가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던 학회다.
반면 마케팅 등 취업 관련 학회나 동아리들은 대부분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가야할 정도로 인기다.
중앙대 경영학과 2학년인 김민현(21) 씨는 1학년 때 ‘무역연구회’에서 학회 활동을 하다가 최근 공모전 준비 위주의 마케팅 동아리에 들어갔다.
김 씨는 “학회는 인원도 활동도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반면 마케팅 동아리 경쟁률은 3:1에 달했다”면서 “공모전을 통해 스펙을 쌓고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쓰기 위해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혜수 연세대 동아리연합회 회장은 “학회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온다”면서 “취업이 너무 힘들고 스펙 쌓기 바쁘다 보니까 대학의 낭만과도 같은 이런 활동들이 시간낭비로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씨는 “나도 학회를 했지만 지원자도 점점 줄어들고 기존 멤버들도 어느 순간 ‘취직과 상관이 없으니 취직 관련된 공부를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는지 절반 가까이 나갔다”고 씁쓸해했다.
전문가들은 극심한 취업난이 이같은 세태를 만들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취업난이 극심한데 기업들은 실용 학문 전공자를 더 많이 찾고 있다”면서 “인문학 전공 학생들도 경제ㆍ경영 등 실용학문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학회활동이 침체되는 건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앞으로 이런 풍속이 심해질 것이라 본다”고 덧붙였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회가 없어진다는 건 취업난에 짓눌린 대학 생활을 반영한다”면서 “이렇게 ‘스펙 쌓기’만 했던 학생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건전한 시민소양이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에 있어서 정량적인 지표에만 집중하지 말고 전인적 인재를 가려내야한다”고 꼬집었다.
badhone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