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시작하는 듯 끝이 나버리는 봄. 그 짧기 만한 봄이 그려내는 가장 화려한 장면은 벚꽃 잎이 바람에 휘날려 비처럼 거리로 쏟아지는 순간일 겁니다. 일순간에 모든 꽃잎이 사그라지는 모습은 매우 극적이어서, 그 이후에 피어나는 모든 꽃들의 존재감을 덮어버리곤 하죠. 이는 마치 슈퍼스타의 고별 무대 바로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무명 가수의 처지와 비슷하달 까요? 황매화는 꽃비가 멎을 무렵 조용히 피어나 봄의 한 페이지를 채우는 꽃입니다.
서울 예장동 남산공원에서 촬영한 황매화.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
황매화라는 이름이 설게 느껴지나요? 이름은 설지 몰라도 여러분들이 이맘 때 길을 오가며 자주 마주치셨을 꽃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길을 걷다가 노란 꽃들을 가득 피운 관목 울타리를 보신 기억이 있나요? 노랗지만 개나리도 장미도 아니었죠? 그렇다면 그 꽃은 황매화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황매화는 매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봄의 문턱에서 만나는 매화와 다릅니다. 둘은 같은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에 속하지만 어디까지나 친척 관계이죠. 친척이면 서로 큰 차이가 없지 않느냐고요? 벼와 보리도 같은 외떡잎식물 벼목 화본과랍니다. 이해가 갑자기 쉬워졌죠? 둘은 꽃을 피우는 시기도 서로 다릅니다. 황매화가 개화하는 시점에는 이미 매화가 지고 없거든요.
황매화는 비록 화려한 벚꽃비에 가려 존재감도 없이 봄의 막바지를 맞이하지만, 매화라는 이름을 거저 얻진 않았습니다. 우선 꽃의 모양이 매화를 닮았습니다. 황매화와 매화의 가장 큰 공통분모는 은은하면서도 기품 있는 향기입니다. 햇살이 가득 내리 쬐는 봄날에 바람이 황매화 울타리를 넘어오며 싣고 오는 향기는 초봄 무렵 짙은 매화의 향기에 지지 않습니다. 황매화의 꽃말인 ‘숭고’와 ‘높은 기풍’을 납득할 만한 좋은 향기입니다. 황매화로부터 뭇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벚꽃비는 향기가 옅은 벚꽃의 투기로 느껴집니다.
아무리 이름을 모르고 지나치는 흔한 꽃이어도 한데 모이면 벚꽃비 못지않은 수려한 장관을 연출하곤 합니다. 황매화도 마찬가지이죠. 지금 충남 계룡산 국립공원에는 황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 또 다른 봄의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계룡산 국립공원은 국내 최대 황매화 군락지로 유명한 갑사 오리숲을 품고 있거든요. 그렇게 볼만하냐고요? 기자가 보증하겠습니다. 기자의 고향이 바로 계룡산 옆이거든요. 계룡산으로 가시거든 구수하고 달달한 공주 밤막걸리 한 잔을 잊지 마시고요. 적당한 취기 속에서 몸으로 스며드는 황매화의 향기는 황홀할 겁니다. ‘벚꽃엔딩’이 울려 퍼져도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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