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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향기 기억해뒀다...슬플때 잠시 꺼내보세요…
포토&영상| 2015-05-22 10:42
“하얀 꽃 찔레꽃/순박한 꽃 찔레꽃/별처럼 슬픈 찔레꽃/달처럼 서러운 찔레꽃/찔레꽃 향기는/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목 놓아 울었지”
음악 담당(식물 담당 아닙니다)인 기자는 지금까지 소리꾼 장사익의 ‘찔레꽃’을 넘어서는 절창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곡을 처음 들었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자는 장사익이 ‘찔레꽃’ 후반부에 혼신을 다해 쏟아내는 목소리를 들으면 숨이 막힙니다. 굴곡진 삶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장사익의 절창은 찔레꽃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슬픈 꽃으로 만들었습니다.
무역회사 사원, 가구점 총무, 독서실 사장, 카센터 직원 등 두 손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많은 직업을 자발없이 떠돌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첫 앨범을 낸 장사익의 인생사는 우리 시대의 전설 중 하나입니다. 3년 전 기자와 만났던 장사익이 전한 ‘찔레꽃’에 얽힌 이야기는 그야말로 설화적입니다.
“1994년 5월쯤인가? 집 앞 길을 걸어가는데 문득 바람결에 좋은 향기가 스며있는 것 아니겠시유? 장미꽃 향기인줄 알고 향기를 따라가 봤는데 장미꽃이 아니었시유. 바로 뒤에 숨어 있던 찔레꽃 향기였시유. 이게 바로 나로구나!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내 처지가 찔레꽃을 닮았구나! 가사처럼 그 자리에서 목 놓아 울었시유. 한참을 울고 돌아와서 만든 노래가 ‘찔레꽃’이지유.”
‘고독’ ‘가족에 대한 그리움’ 같은 꽃말이나 장사익의 노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찔레꽃을 향한 정서는 일관되게도 ‘슬픔’입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찔레꽃의 개화기가 춘궁기와 포개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먹을 것이 지천에 널린 요즘에야 생소한 옛이야기이지만,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에게 찔레꽃은 과거 보릿고개의 허기를 달래던 서러운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매개이니까요.
통통하고 연한 찔레순은 달짝지근한 맛을 냅니다. 단 것이 귀했던 과거에 찔레순은 군입을 달래주던 주전부리였을 겁니다. 찔레순을 따다보면 가지에 돋은 가시에 찔리기 일쑤입니다. 찔레란 이름은 절로 나온 게 아닙니다. 배가 고파 찔레순을 따 먹다가 가시에 찔려 울며 집으로 돌아오는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가시에 찔리는 것보다 더 아팠겠죠. 홀로 남은 아이가 화자인 이연실의 ‘찔레꽃’은 이 같은 슬픔의 정서를 극대화 한 곡입니다. 일을 나간 어머니를 홀로 기다리며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찔레꽃을 따 먹는 아이. 아이를 대신하는 이연실의 목소리가 청아해 더욱 가슴을 저리게 만듭니다.
대전 대덕구 비래동 금성백조아파트에서 촬영한 찔레꽃.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한국은 10년 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길 꺼리는 한국인의 성격 탓이겠죠. 세간에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는 말이 떠돌더군요. 이 얼마나 살벌하고 서글픈 말입니까. 그러니 사람들이 더욱 자신의 감정을 꽁꽁 감추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플 때 울면 좀 어때요? 퇴근길에서 찔레꽃을 만나시거든 향기를 맡아 기억해두세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방에서 홀로 장사익과 이연실의 ‘찔레꽃’을 들어보세요. 슬플 때 펑펑 흘리는 눈물만큼 ‘힐링’이 되는 것도 드물더군요.
글·사진=정진영 기자/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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