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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일간의 세계여행] 39. 비현실적인 마추픽추…살아 숨쉬는 잉카문명
엔터테인먼트| 2015-06-30 10:42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마추픽추(Machopicchu)로 가는 전초기지 아구아스 깔리엔테스(Aguas Calientes)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일찍 일어난다. 여기서 마추픽추 입구까지는 순환버스를 타고 오른다. 걸어서 오르는 사람도 있다지만, 오를 때는 버스를 타고 내려올 때만 걸어볼 생각이다. 원래 버스가 새벽 5시 30분부터 있다고 하는데 얼마 전에 일부 도로가 유실되어 7시 30분부터 운행된다고 한다. 7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첩첩산중이긴 하지만 각국의 여행자들로 붐비고 있어서 이곳이 고지대 산골마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추픽추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하더니, 실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 있다. 남미에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남미로 여행은 오는 사람도 있다 할 정도다. 아침 일찍 서두른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사람 마음이 다 비슷하니 마추픽추로 오르는 버스마다 사람이 가득하다.



버스는 굽이굽이 비탈길을 천천히 오르며 한참을 가다 멈춘다. 유실된 도로로는 버스운행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 버스에서 내려서 마을의 계단을 통해 길이 뚫린 곳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마추픽추로 오르는 길 사이엔 계단식으로 연결된 집들이 있다. 버스든 마을이든 어디에서 바라보아도 경치는 절경이다. 마을을 걸어서 계단을 거쳐 오른 대기하고 있는 버스가 있다. 다시 버스에 승차해 드디어 마추픽추 입구에 도착한다.

돌을 쌓아 놓은 잉카제국의 정문을 지나니 드디어 마추픽추가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순간, “와~”하는 짧은 신음소리만을 내뱉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토록 보아왔던 사진속의 낯익은 마추픽추가 눈앞으로 펼쳐지는 장관에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발은 시선이 닿는 방향을 향해 대책 없이 전진한다.



구름이 많거나 비가 오는 날도 많다는데 오늘 날씨는 최상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흰구름을 머리에 쓰고 있는 듯한 봉우리들을 바라보자니 마치 이곳이 사람의 세상이 아닌 듯하다. 이 깊고 깊은 산자락에 돌을 깎고 쌓아 만든 사람의 도시가 있을 거라고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곳에 와서 이 장관을 내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 깊고 험준한 산골짜기에 돌을 운반하고 실하지 않은 연장으로 꼭 맞게 다듬어 저런 도시를 건설해 놓은 잉카인들, 그 후예들의 나라가 바로 페루다. 



이 도시를 건설하고 거주했던 잉카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더 가까이 다가가 도시 안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 반, 여기서 조금 더 내려다보고 싶은 마음이 반이다. 두 마음 다 마추픽추를 아끼는 마음일 뿐이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과 마주보는 계단식 유적이 신기하기만 하다. 위로는 하늘을 마주 보지만 아래로는 현기증 나는 험준한 골짜기로 이어지는 계단이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경이롭다.



안데스 산맥의 높은 봉우리들로 겹겹이 둘러싸인 마추픽추의 높이는 겨우(?) 2,400m 정도라고 한다. 그를 둘러싼 주위의 봉우리들이 훨씬 더 높아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으며, 고지대임에도 불구하고 평탄한 지형을 가진 편이라 도시를 건설하기에 최적이었을 것이다. 오직 하늘에서나 도시전체를 볼 수 있어 마추픽추를 공중도시라고도 한다.

잉카의 고대유적과 16세기의 유적이 공존하는 마추픽추, 아득한 고대든 불과 400년 전인 16세기든 여기에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걸었을 거리, 농사지으러 다녔을 계단식 밭, 소원을 빌었을 신전에는 쌓아올린 돌, 무심히 자란 풀과 함께 바람만 황량하다. 왜 도시가 건설되었는지, 왜 갑자기 잉카인들이 이 도시를 버렸는지 규명된 것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세계 최대의 불가사의라며 이곳을 찾아온다.



시선이 닿는 곳,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계단식 농경지나, 망지기의 집, 장례용 바위, 채석장과 세 창문의 신전, 태양의 신전 등 도시의 구조를 담당했던 흔적들을 그대로 만난다. 산비탈의 경사면에 물을 끌어올려 사용할 수 있는 배수시설까지 완벽하다고 한다. 도시에서 필요한 것은 다 갖춰져 있다. 빈틈없이 정교한 기술로 돌을 다듬고 도시를 설계하던 잉카인들은 사라지고 도시만이 남았다.

잉카인들이 집단 활동을 하던 널따란 광장에 지금은 야마들만 귀엽게 노닐고 있다. 들은 이야기로는 관광용으로 풀어놓은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방인의 눈에는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하늘아래 평온한 야마들이 신의 정기라도 받은 것처럼 보인다.

마추픽추는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금방 보이던 유적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마술 같은 일이 생긴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은 안데스 산맥과 우루밤바 강의 풍경 역시 절경이다. 



마추픽추의 전경을 더 잘 보기 위해서 와이나픽추(Wynapicchu)에 오른다. 하루 입장객 수를 제한하는 이곳은 마추픽추 바로 옆 경사가 급한 높은 산봉우리다. 경사가 급격히 높은 역시 이곳에도 돌로 쌓은 구조물들이 있다. 서둘러 와이나픽추에 오른다. 이곳에 오르는 이유는 공중도시라는 마추픽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다. 미끄러짐 방지를 위해 손을 의지할 난간은 있지만, 이미 충분한 고산 지역인 이곳에서 다시 경사가 70도는 될 듯한 봉우리를 오르자니 숨이 차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드디어 와이나픽추의 정상이다. 발 아래로 공중도시 마추픽추가 한눈에 조감된다. 처음 마추픽추를 대할 때처럼 다시 “와~” 하는 신음소리만 흘린다. 산행이 힘들긴 하지만 역시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는 하루다. 와이나픽추에 앉아 안데스의 풍경을 둘러본다. 정오가 훨씬 지나 구름은 걷혔지만 신선이라도 된 기분이다.

지난 몇 번의 여행으로 만리장성이나, 피라미드, 타지마할, 콜로세움 같은 유적지에서도 감탄을 하고 감동을 받았지만, 여기 마추픽추에서는 묘하게 더 진한 감동이 느껴진다. 남미라는 낯선 대륙, 페루라는 먼 나라, 바다를 건너 사막을 넘어 산을 건너 여기로 오는 과정이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려오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훨씬 힘들다. 미끄러지는 걸 조심해야하기 때문이다. 와이나픽추를 내려가는 길, 길은 한 사람 정도 움직일 폭 밖에 없다. 오르는 사람들과 내려오는 사람들이 서로 기다리며 양보를 해주어야 갈 수 있다. 몇 번의 미끄러질 위기를 모면하고 무사히 내려온다. 내려오다 만난 사람이 그걸 신고 저 산을 올랐느냐며 내 운동화를 보고 깜짝 놀란다. 그녀는 완벽한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신발이라곤 가벼운 트레킹화와 크록스 뿐인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인도식으로 대답한다. “노 플라블럼!”



기념품점에서 엽서 한 세트를 사서 마추픽추에서 나온다. 마추픽추에서 보낸 엽서는 지인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출발지인 아구아스깔리엔테스 마을까지는 걸어서 내려간다. 바닥 얇은 운동화를 끌고 두 시간 넘게 걸으며 마을로 내려가는 동안 하늘은 잿빛이 되더니 급기야 굵은 빗방울을 떨어뜨린다.

마추픽추라는 거대한 산 하나를 이제 막 넘어서고 있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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