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함영훈의 이슈프리즘] 상고법원 좌충우돌, 국민만 배제된 논란
뉴스종합| 2015-07-14 11:22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상고법원이 뭐길래…. 변호사회 지도부는 찬성하고 회원들은 반대하고…. 광주 변호사들은 반대하고 호남 기반이 강한 야당은 찬성하고…. 대구는 찬성하고 부산은 반대하고…. 춘천지법이 찬성 캠페인을 벌이자 강원도 변호사들은 입을 닫고….

대법원이 상고(上告)사건 심리를 신속하고 충실하게 진행하기 위해, 중요사건을 제외한 개인간 권리구제에 관한 경미한 사건를 전담할 ‘상고법원’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논의가 기준도, 명분도 모호한 채, 이해관계와 명예욕이 얽히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정작 공공 법률서비스의 수혜자가 되어야 할 시민들이 철저히 배제된채, 법조계 일각의 영역 및 밥그릇 다툼으로 비화되고, 심지어 특정 그룹을 겨냥한 음모론 까지 나오고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제라도, ‘다분히 한국적인 법치주의 인습과 정서’ 속에서 상고심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국민의 절박한 심정을 논의에 중심에 두고 상고법원 토론을 차분히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민이 논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적인지 친구인지, 어디가 흑인지 백인지….=광주지방변호사회는 소속 변호사 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상고법원 찬성이 24명, 반대가 63명, 무응답 1명으로 나타났다고 14일 밝혔다. 찬성 이유로는 ‘사건 심리 충실화’ 등이 꼽혔고, 반대 이유로는 ‘헌법상 3심제 원칙 위배’ 등이 주로 거론됐다.

이 사안을 심의하게 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경우, 현재로선 찬성이 약간 우세할 뿐 상황을 보겠다는 의견이 적지않다. 호남이 중요한 정치적 기반 중 하나인 야당 의원들은 광주지역 법률가들의 대세 의견과는 달리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여당은 찬반양론이 엇갈리면서 의견유보자가 많다.

여당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울산,경남변호사회는 “국민이 대법원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반대 입장을 공식 천명한데 비해, 대구변호사회는 최근 회원 14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2.7%인 104명이 찬성한 것으로 나타나자 대한변협에 이같은 여론을 전달했다. 영남이 중요 기반인 여당이 혼란스러울만 하다.

제주지방변호사회가 진행한 조사에서는 소속 변호사 48명 중 찬성이 41명으로 압도적우세를 보였다.

대한변협은 공식 반대입장을 밝혔지만, 전체의 70%가 넘는 회원수를 보유한 서울변호사회는 설문조사 응답 회원 1025명중 찬성 54.8%, 반대 42.9%로 나온 결과를 공개하며 찬성의 뜻을 시사해 변혐을 곤혹스럽게 한다.

현재 지방변호사회 별로 ▷찬성 의견은 서울,인천,대구,제주 ▷반대 의견은 부산,광주,울산,경남,충북에서 우세하고 ▷회원들의 의견이 팽팽해 의견을 발표하지 않거나 중립을 견지하는 곳은 대전, 경기중앙, 경기북부, 강원, 전북 변호사회이다.

반대론 변협에 동조 천명한 지방변회는 14분의3= 대한변협은 최근 “상고법원은 공간을 대법원 건물 내에 두어도 위헌”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변협은 “헌법 제101조 제2항은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도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고 그 아래 심급을 달리 해 각급법원을 두도록 하고 있다고 판결했다”며 “법원은 헌법상 대법원과 그 아래 심급을 달리하는 각급법원으로 조직되므로 상고법원은 ‘각급법원’에 해당할 수밖에 없는데, 대법원이 구상하는 상고법원은 대법원과 같은 심급인 상고심을 관할하는 법원으로 위헌적 제도”라고 지적했다.

변협은 지난해 상고법원 얘기가 새로이 불거졌을때 대법관 증원이 상고법원 설치보다 더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과반을 넘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하지만 지방변호사회 중에서 변협에 공식 동조 입장을 밝힌 곳은 부산, 울산, 경남 변회 뿐이고, 반대 의견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광주와 충북은 아직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중립적 입장인 대전변회 일각에서는 상고법원이 설치된다면, 서울 서초동이 아닌, 세종시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어 주목된다.

한국공법학회는 8월초에 내놓을 연구보고서의 핵심, 즉 ‘상고법원은 위헌이 아니다’는 내용을 지난 2일 관계자의 말을 통해 은연 중에 공개해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또 전국 판사들이 지역 변호사들을 상대로 상고법원 찬성을 독려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일은 묘하게 틀어지고 있다. 최근 춘천지법이 상고법원 찬성 자전거캠페인을 벌이자 강원변호사회는 상고법원에 대해 입을 닫아버렸다.

국민 배제, 음모론으로 비화= 상고법원 반대론 이면에는 대법관 증원이 자리잡고 있다. 대법원이 대법관 증원을 막기 위해 상고법원 설치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반대론자 중 극소수 강경파 내에선 “엘리트 판사 극소수가 법률가의 최고 권위인 대법관을 자기네들끼리 나눠먹으려 한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는다.

상고심 병목현상을 막기 위해 시행하던 심리불속행 제도를 폐지한다는 설도 들린다. 이에 대해 변호사 일감을 늘려주기 위한 협상카드 아니냐는 경계론이 제기된다. 심리불속행제도란 형사를 제외한 민사ㆍ행정ㆍ가사ㆍ특허 사건 중 법에서 정한, ‘특정한 사유’를 포함하지 않으면 심리를 계속 하지 않고 사건을 기각하는 것이다.

일부 지방의 변호사들은 “상고법원 재판관들이 대법관과 동일한 예우를 받아야 한다”, “국민을 위한 상고법원이라면 고등법원이 있는 모든 곳에 상고법원을 설치하라”, “시군법원에도 상고심 재판관을 두어야 향판, 향변들도 기회가 있을 것 아니냐”는 주장도 편다. ‘명예직 파이 키우기 펌프질’로 해석된다.

‘배운 사람들’의 얘기들이 저마다의 이해관계, 명예욕, 자기 영역지키지, 밥그릇 등을 변수들과 뒤엉키면서 상고법원 논의가 산으로 가는 사이, 이 토론의 중심이 되어야 할 국민은 철저히 배제돼 있다.

뜻있는 법조인들은 음로론 루머 전파, 선무공작, 정치권 로비 등을 배제한 채, 일반 국민, 법률소비자가 참가하는 토론체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시스템 구축 역시 ‘법관의 양심에 기반한’ 대법원의 몸을 낮추려는 자세에 달렸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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