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500만원…500~1000명 활동…성형·정형외과 무리한 수술일정
인건비도 저렴해 악마의 유혹…美선 의료사고때 살인미수 기소
복지부는 현황조차 파악못해
“제가 아는 의사도 ‘오더리’에게 지방흡입수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의사의 병원이라 법적으론 문제 삼지 않았는데 비극스러운 현실이죠.”(노환규 전 의사협회 회장)
의사를 대신해 무면허 불법 수술을 서슴지 않는 일명 ‘오더리’가 의료업계에 판을 치고 있다.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반인륜적 범죄행위지만 밀폐된 수술실의 특성상 적발이 쉽지 않고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감시체계 확충과 분명한 처벌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사진>강남지역의 한 성형외과에서 무면허 의료업자인 간호조무사 이모(48) 씨가 성형수술을 시행하면서 다른 의사들에게 교육까지 하고 있다. [제공=경찰청 지수대] |
▶‘숨은 실력자’ 전국에 500~1000명=‘오더리(orderly)’란 원래 의사의 지시(오더)를 받고 일하는 남자 간호인력을 가리키는 비공식 의료용어였다. 대개 남자 간호조무사들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오더리 중 의사의 어깨 넘어 배운 수술법으로 직접 메스를 잡는 경우가 있는데, 손기술 좋아 왠만한 의사보다 수술을 잘하는 이들은 업계에서 ‘숨은 실력자’로 입소문이 나게 된다.
보통 수술 경력이 10년이 넘어가면 베테랑으로까지 인정을 받게 되는데 이들을 가리켜서도 오더리라 칭하고 있다. 의료계는 이같은 오더리의 수가 전국에 최소 500~1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무자격자에 의한 불법 수술은 간호조무사 뿐 아니라 수술 의료자재나 기기를 납품하는 업체의 사람에 의해서도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경찰은 최근 강남지역의 한 성형외과 원장이 무면허 의료업자를 고용, 성형수술을 하고 국세청 로비로 탈세를 벌인 사실을 적발했다.
이 병원에서 일한 40대 간호조무사 남성은 성형수술 경력이 20년이나 돼 업계에선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다.
이 병원은 이 오더리를 활용, 연 12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고 심지어는 일반의들을 대상으로 2000만~3000만원의 수강료를 받고 이 오더리에게 교육을 받게 하기도 했다.
작년 김해에서도 40대 남성 조무사가 2010년부터 병원장 대신 무릎절개, 연골제거 등 총 849차례의 무면허 수술을 벌인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병원의 ‘탐욕’인가, 의료계의 ‘현실’인가=오더리는 병원마다 편차가 있지만 대체로 월 400만~500만원 수준의 급여를 받고 일하며 의료사고 유발률도 생각보다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더리 기승의 1차 원인은 병원들의 도 넘은 수익 욕심에 있다는 분석이다. 수요가 급증한 성형외과뿐 아니라 정형외과에서도 척추질환 등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수술을 권유하면서 무리하게 잡힌 수술일정 소화를 위해 오더리를 투입시키고 있다. 병원으로선 일반 의사보다 인건비도 저렴해 일석이조다.
지방 일부 병원에선 부족한 의료인력 수급 실태가 빚은 불가피한 현실이란 주장도 나오지만 이 역시 명백한 불법 행위를 정당화해줄 순 없다는 지적이다.
의료기기 시장의 과다 경쟁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관측이다. 전국에 의료기기 업체가 2000곳 정도 되는데 병원을 상대로 제품을 팔아야 하는 ‘을’의 입장으로선 기기 사용을 시연한다는 명목 하에서 수술까지 대신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현황파악도 못하는 당국=이 때문에 획기적인 근절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장은 “‘유령수술’이라 불리는 오더리 수술은 반인륜성과 사기성을 모두 갖춘 범죄”라며 “적발시 의사면허를 10년간이나 영구 정지시키는 등의 강력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환규 전 의협회장은 “협회의 자율징계권이 확보돼야 자발적인 자정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뉴저지 대법원은 지난 1983년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사람이 환자의 신체를 칼로 절개해 손을 집어넣는 행위는 단순 업무과실이 아닌 살인미수로 기소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하지만 주무당국인 보건복지부는 오더리의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관계자는 “전국 8만5000여개 의료기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파악하기가 어렵다”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전국의 보건소에서 실제 단속을 나가고 있어 그것을 총괄하는 역할밖엔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서경원ㆍ이세진 기자/gi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