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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일간의 세계여행] 43. 내 심장을 뛰게 한 우유니사막…그리고 하늘과 바람과 별
라이프| 2015-07-22 10:45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웹서핑 중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이 심장을 뛰게 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는 설명이 달린 우유니 사막 사진이었다. 볼리비아의 척박한 내륙 고원지대에 위치한 소금으로만 이루어진 사막이라고 했다.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열망과, 닿을 수 없는 아득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남미 여러 국가들 중에서도 유난히 척박하게 느껴지는 볼리비아에 황열병 예방접종 증명서를 챙겨서 찾아온 것은 바로 우유니(Uyuni)의 소금사막 때문이다. 그 존재를 알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났고, 꿈은 드디어 오늘 현실이 된다.



지프차 한 대에 여섯 명이 타서 우유니를 비롯한 볼리비아의 고산지대를 2박3일간 누비게 된다. 이 투어의 핵심은, 말할 것도 없이 우유니사막이다.

우유니를 향해 출발한 지프는 꼴차니(Colchani) 마을에 들른다. 소금사막에서 가져온 소금을 가공하는 마을이다. 그지없이 황량한 사막마을에서는 소금으로 만든 여러 가지 기념품을 팔고 있다. 화장실에 들르고 좌판을 구경하지만 마음은 이미 우유니로 가 있다.



다시 적막한 풍경 속을 달려 소금 사막에 가까워진 지프는 또 한 번 정차한다. 1950년대 이전까지 열차들의 교차로였던 우유니에 수명을 다한 열차들이 멈춰 있는 곳이다. 스페인의 남미 개척 시절에 볼리비아와 칠레를 넘나들며 은을 실어 나르던 기차들은 이제 갈 곳이 없다. 메마른 땅 위에 녹슨 기차들이 방치된 쓸쓸한 풍경에는 “폐기처분”이라는 단어가 딱 들어맞는다. 쓸모가 다해져도 쉽게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강철의 속성이 오히려 가련하다. 게다가 ‘기차들의 무덤(Cementerio de Trenes)’이라는 이름이 처량함을 더한다.



기차들의 무덤을 떠나 본격적으로 소금기 머금은 척박한 땅을 달린다. 몇 대의 여행자용 지프만이 지나가는 황막한 대지와 맞닿은 하늘에는 한여름의 태양이 이글거린다. 우유니 소금사막(Salar de Uyuni)로의 로망이 지프의 속도만큼이나 성큼성큼 실현되고 있다. 물이 고여 있기는 해도 사막의 가장자리는 빠르게 물이 증발해서 소금 결정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드디어 우유니 소금 사막에 도착한다.

​호수처럼 보이는 것은 소금사막에 고인 얕은 물일뿐이다. 광대한 소금호수 위를 지프를 타고 달린다. 하늘이 그대로 비춰지니, 땅도 온통 하늘인 것 같다. 두 번 만나기 힘든 아름다운 풍경은 환호성을 절로 부른다. 하늘 위를 달리는 기분이다.



오래 전 깊은 바다가 융기해서 해발 4000m의 고지대 소금사막이 형성되었고 그것이 바로 우유니다. 우기가 되면 표면의 소금이 녹아 물이 고이게 되어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풍경을 만든다. 광활한 고원은 원근감을 상실하게 하는 착시 현상까지 일으킨다. 사람의 발자국이 아니라 지구의 신비한 역사가 기록되고 보존된 자연의 박물관이다.



우유니 사막의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보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이 필수다. 1~2월 남미의 우기에 여행할 것, 도착 전날쯤 충분한 비가 내려 소금사막을 적실 것, 우유니에 도착하는 날은 화창할 것, 이 삼박자가 맞아야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에 나를 비춰 볼 수 있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경이로운 풍경 속에 서 있게 되었다.



물기가 적은 곳은 빠르게 증발되어 소금이 쌓이고 있다. 바다가 융기해서 고원의 소금호수로 변했다는 과학적 설명보다 대자연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작고 미약한 존재인지, 인생이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더 빠르다.

소금 사막 한가운데 소금벽돌로 지어진 건물 앞에 지프가 멈춘다. 드디어 두 발을 소금 사막에 딛는다. 이미 몇 대의 지프가 멈춰 서 있다. 바다처럼 넓은 소금 호수 위에는 여행자들이 흩어져 이 말도 안 되는 풍경에 넋을 잃고 있다. 건물 앞에는 세계 각국의 국기가 펄럭인다. 남극에라도 도착한 사람처럼 태극기를 펼쳐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하늘과 땅의 경계조차 모호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어디를 돌아봐도 하늘과 구름뿐이다. 멀리 흩어져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은 꿈결인 듯 아득하다. 흰 구름 떠 있는 파란 하늘과, 그 하늘이 그대로 비춰진 소금호수는 이미 분간 할 수 없다. 지평선이란 말이 무색하다.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순간이란 이런 경우를 일컫는 것일까?



하늘과 소금호수에 두 개의 태양이 이글거린다. 끝없는 풍경 속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내 시선이 느껴진다.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날 줄 모르고 시간의 흐름을 잊게 된다. 따가운 햇살 때문에 선글라스를 꼈지만 두툼한 스웨터와 페루바지를 입고 맨발에 크록스를 신은 괴이한 차림으로 찰랑거리는 소금호수 위를 걷는다. 소금물이 닿은 바짓가랑이는 하얀 소금이 되어 뻣뻣해지고 발가락은 점점 더 쪼글쪼글해진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철수해야 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밤이 되면 암흑의 바다가 될 것이다. 소금이 햇볕에 증발되면서 거북이 등껍질 같은 육각형의 결정이 생기는 게 보인다. 우기가 지나고 건조해지면 이곳은 진짜 소금사막으로 변할 것이다.

아쉬움에 눈을 떼지 못한 채 우유니 사막이 멀어진다. 소금사막에서 멀지 않은 숙소에는 씻을 물도 없다. 온종일 소금기를 쩔은 몸을 씻지도 못하고 마지못해 생수로 얼굴과 손발을 닦는 시늉만 한다. 지프의 동행들과 꼬질꼬질한 얼굴을 맞대고 운전기사들이 요리해 오는 저녁을 먹는다. 특별한 고산병은 아니지만 소화가 잘 안되어 뱃속이 계속 부글거린다.



저녁을 먹고 나자 무서울 만큼 빠른 속도로 어둠의 장막이 드리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자가발전을 하는 곳이라 식당에 켜둔 백열등 하나만 바람에 흔들린다. 시시각각 어두워지고 추워지는 해발 4000m 고원의 밤, 누추한 숙소 담장밖엔 어둠뿐이다.

사방이 적막하고 할 일도 없는 밤, 패딩을 껴입고 손전등을 꺼내 든다. 대문을 나서니 주위가 까맣다. 숙소에서 몇 발자국 떼지도 않고서 바로 손전등의 스위치를 끄게 된다. ​암흑뿐일 줄 알았던 해발 4천 미터 고원 위에 이미 온 우주가 들어와 있다.

별 하나 하나가 어떻게 빛나는지 또렷이 보인다. ‘별’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별에게 어울리는 음절인지 비로소 깨닫는다. 앞으로는 어느 누가 어떻게 별을 노래했대도 귀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찬란한 별들의 행진을 보고 있다면. 별이, 무수한 별들이 제 각각의 밝기를 있는 그대로 뽐내며 머리 위로 별빛을 쏟아 붓고 있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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