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취재X파일]‘센 언니’ 심상정, 심상찮다
뉴스종합| 2015-07-25 10:09
[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정의당을 이끌게 된 심상정 대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심 대표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시대가 그를 다시 보려는 조짐입니다. 심상정 대표가 ‘일당백(一當百)’의 기개를 갖춘 정치인이란 이미지를 구축한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에 더해 논리도 장착한 정치인이라는 인식이 뒤늦게 일반에 퍼지고 있습니다.

진보정당에 몸담은 이 정치인의 ‘몸값’을 올리고 있는 데 기여한 건 ‘아이러니컬’하게도 ‘보수의 아이콘’이라고 통칭되는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박 대통령은 최근 노동개혁을 주창하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 정치인 가운데 전문가이자 박근혜 정부 논리의 허점을 뽑아내는 데 정통한 인물을 꼽자면 심상정 대표를 빼놓을 수 없어서입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지난 24일 오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찾아 노동개혁 등에 관해 얘길 나누고 있다. 박해묵기자/mook@heraldcorp.com

정당에 있어 ‘20’이란 숫자는 ‘힘’을 뜻하거나 ‘좌절’을 의미합니다.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기준이 ‘국회의원 20명을 갖고 있는 정당이냐’이기 때문입니다. 심상정 대표가 이끄는 정의당은 이에 턱없이 모자랍니다. 좌절하거나 현실 안주를 해야 맞는데, 그에게 쏠린 시선은 뜨겁습니다. 재론하지만, 박 대통령이 화두를 던진 노동개혁의 힘이 적잖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장면을 심상정 대표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찾아간 지난 24일로 옮겨 봅니다. 심상정 대표는 인사말 끝에 김 대표에게 이런 말을 던졌습니다. “지역주민들이 (내가) 당 대표가 되니까 ‘대통령이 여전히 너무 세시니까, 더 센 언니가 돼라’ 그런 덕담을 많이 듣고 있다”고 한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보다 더 센 언니(?).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낙선시키려고 나왔다던 그 ‘후보’의 강경함을 말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라고 할 수 있는 박 대통령을 둘러싼 콘크리트 지지층의 벽에 막힐 테니까요.

심상정 대표는 이슈에 천착했습니다. 그는 김무성 대표에게 “최근 노동개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10위권 경제대국이 되기까지 허리띠를 졸라매고 헌신한 노동자의 수고가 컸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는 ‘곁다리’가 아니라 ‘한국의 적통’”이라고 했습니다.

심 대표는 그러면서 “노동시장 개혁 관련해선 무엇보다 이해당사자 간의 협의ㆍ합의가 절대적으로 존중돼야 한다”며 “일방적으로 힘으로 밀어 붙여서 안 된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심 대표의 머릿속엔 현재 논의되고 있는 노동개혁은 정년보장도 제대로 해주지 못하면서 청년 일자리를 위해 중ㆍ장년층의 임금을 깎겠다는 것으로,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란 인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울러 대기업들이 핵심 인력이 일하는 분야 외엔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는데, 노동시장 유연성(특히 ‘쉬운 해고’)을 확보해야 한다는 정부 측 논리에도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통상 상견례 자리에서 꺼내기엔 어울리지 않는 설전(舌戰)의 재료를 꺼낸 겁니다. 김무성 대표의 표정은 밝지 않았습니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 이후 표를 잃더라도 노동개혁에 새누리당의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힌 주역이어서 일 겁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은 격차해소에 있다”며 “(노동개혁은) 결코 노동자에 불이익이 아니다. 결코 밀어붙이기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심상정 대표는 “노동시장 개혁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는 걸 참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최저임금 인상을 기업부담으로 생각하는데 지금처럼 세계경제가 장기 침체된 때엔 아래로부터 소비여력을 만들어서 경제를 돌리는 게 긴요한 시점이다. 비정규직을 줄이고, 젊은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보장하는 방향에서 개혁이 이뤄져야 양극화가 해소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김무성 대표는 “그런 논리를 대화의 장에서 찾자. 정의당도 참여하는 걸로 하자”라고 했습니다. ‘여야’라고 할 때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키플레이어’ 외에 소수정당인 정의당도 의견을 개진할 공간을 심 대표가 확보한 셈입니다.

심 대표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도 만나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김무성 대표를 만난 직후인데요, 심 대표는 “새정치연합이 선거법 개정 관련 당론을 정해주시고, 야권 단일안을 만들면 좋겠다”며 “서둘러 야권 단일안을 만들어 정치개혁에 소극적인 여당에 맞서자”고 했습니다. 지리멸렬한 새정치연합을 상대로 선제적으로 내년 총선 무대에서 ‘키맨’으로 나설 의중을 내비친 걸로도 해석됩니다.

심상정 대표는 정의화 국회의장을 만나서도 간단치 않은 정치인임을 알렸습니다. 정 의장은 “우리나라 정치가 발전하려면 정의당이 내년 총선에서 아주 성공해야 하는데 앞으로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10석 정도로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심 대표는 “(교섭단체 구성 요건 완화가) 의장님 재임기간에 실현되도록 도와달라”며 “야당들이 힘을 합쳐서 정권을 제대로 견제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당연히 야당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심상정 대표의 정의당에 대한 지지도도 큰 폭으로 오르고 있는 걸로 조사됐습니다. 여론조사 기관인 한국갤럽이 지난 21~23일까지 성인1003명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정의당의 지지도는 7%로 창당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전주(3%)보다 무려 4% 포인트나 올라간 겁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심상정 효과’라고도 합니다.

심상정 대표의 이같은 ‘심상치 않음’이 정의당의 ‘신장개업’ 혹은 ‘재개장’에 따른 대중의 일시적인 관심인지 아닌지 여부를 판단하기엔 섣부를 것입니다. 다만, 보수와 진보의 경계가 모호한 한국정치의 현실에서 양당 체제에 염증을 느낀 일부 국민들에게 어필할 여지는 있는 것 같습니다. 관건은 진보정당이 얼마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확장성을 갖느냐입니다. 심상정 대표가 취임일성으로 당의 95%를 바꾸겠다고 했다니 일단은 지켜볼 일입니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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