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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우도, 그 곳엔 두 개의 바다가 있다
라이프| 2015-07-27 07:38
[강진=이윤미 기자 글ㆍ사진]‘강진은 날씨보다 마음이 더 따뜻한 고장입니다’

풀치터널을 지나자 비가 가늘어졌다. 세찼던 비가 터널을 지나며 얌전해졌다고 느낀 건 아마 강진군에 온 걸 환영한다는 저 현수막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암군과 강진군을 가르는 풀치터널은 길지 않지만 경계는 뚜렷했다.

강진은 다산 정약용과 뗄 수 없는 곳이다. 강진 곳곳에 다산의 자취가 남아있다. 1801년 다산의 유배는 죽음을 겨우 면한 참혹한 길이었다. 정조의 사랑을 받은 정약용은 정조 사후 순조와 정순왕후의 뒷배인 노론에 의해 사학에 빠졌다는 이유로 형 정약전과 유배길에 오른다. 나주에서 형과 헤어진 다산은 마을로 들어섰지만 사람들은 죄인인 그를 멀리했다. 다산은 당장 잘 곳, 먹을 것을 구해야 했다. 발길은 동문 밖 주막을 찾았고 주막의 노파는 그에게 뒷방 하나를 내준다. 다산은 그 초라한 방을 사의재(四宜齋)라 이름 지었다. 마땅히 해야 할 것 네 가지, 즉 생각을 바르게 하고 용모를 단정히 하며, 할 말만 하고 행동을 무겁게 하는 생활, 예의 기둥을 세운 셈이다. 한편으로 다산으로선 그럴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다산을 취조했던 안묵이 강진 현감으로 내려와 있었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사람이 코 닿을 거리에 있다면 빌미를 주어선 안될 일이다. 다산은 사의재에서 4년 동안 기거하면서 제자 여섯을 길러냈다. 다산의 강진 유배는 무려 18년. 학문의 절정기, 실학사상의 꽃을 이 곳에서 피운 것이다. 지금 사의재는 복원돼 술과 식사 등을 팔고 있다. 일대는 당시 저자거리와 한옥체험관을 조성, 옛 생활과 예절, 차 체험을 할 수 있다.
강진의 마량항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마량놀토수산시장’이 열린다. 싱싱한 회를 값싸게 먹을 수 있는 횟집이 늘어서고 최우수 수산물과 건어물을 최저가로 살 수 있다. 가족체험 무료낚시터, 토요음악회, 모터보트 해상 투어 등 먹거리, 놀거리, 볼거리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다산은 어느 날 현재의 강진군청 뒤 고성사라는 절을 찾았다가 백련사 주지 혜장스님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혜장과의 인연으로 다산은 고상사에서 2년을 기거하고 다시 제자의 집이 있는 목리에서 2년을 기거한 뒤, 1808년 해남 윤씨 가문의 도움으로 산정으로 옮겨, 다산초당이라 짓고 10년 동안 생활하게 된다. 다산은 이 곳에서 여유당전서 등 수백권의 책을 집필한다. 윤선도 집안은 다산의 외가다. 윤선도의 6대 손녀, 윤두서의 손녀딸이 다산의 모친이다. 

가우도, 그 곳엔 두 개의 바다가 있다=강진은 바닷물이 땅 깊숙이 들어와 동과 서로 갈린다.

동과 서로 갈린 바다 한가운데 섬이 있다. 가우도다. 소의 멍에를 닮았다해서 가우도(駕牛島)다. 강진만 8개의 섬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으로 14가구가 살고 있다. 섬에는 약 600여년 전부터 고씨 성을 가진 이들이 20여호 무리지어 살다가 떠나고 지금은 경주 김씨가 자리잡고 살고 있다. 섬은 9만7000평, 바닷길을 따라 1.71km의 ’함께해길‘이 조성돼 있다. 북쪽 저두출렁다리 앞에서 시작해 왼쪽 길로 접어들면 나무 데크로 만든 길이 편안한 걷기의 시작을 알린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얼마간 모래사장이 드러났다가 밀물이 되면 해길 바로 옆까지 바닷물이 밀려와 물 위를 걷는 느낌이 든다. 같이 밀려왔던 꽃게가 데크 위에서 우왕좌왕한다. 강진의 바람 속에는 비릿함이 거의 섞여있지 않다. 이는 물을 잔뜩 머금은 길 따라 핀 풀과 꽃 내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로 어울린 짙은 풀들 사이, 분홍색 해당화가 홀로 활짝 피었다. 길을 걸으며 꽃을 발견하는 기쁨은 새롭다. 하얀 치자꽃도, 깔대기 모양의 연분홍 댕강나무꽃도 바다보다 더 눈길을 붙잡는다. 마루를 깐듯 편한 길에선 왠지 뛰고 싶다. 얼마간 걷다보면 강진의 또 하나의 자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영랑 김윤식(1903~1950)의 이름을 딴 ’영랑나루 쉼터‘가 나온다. 영랑이 앉아있는 벤치 주변으로 ‘시문학’ 창간호에 낸 시 ‘동백닙에 빗나는 마음’을 비롯, ‘내마음 고요히 고흔봄 길우에’ 등의 시가 걸려 있다. 벤치에 걸터앉아 마냥 바다 바라기를 해도 좋을 장소다. 영랑을 뒤로 하고 걷다보면 나무받침을 해놓은 귀한 대접 받는 나무들이 종종 눈에 띈다. 황칠나무다, 강진의 황칠은 칠 중 으뜸으로 쳤다. 황금색이 나 황칠로 불린 최상품으로 주로 궁에 들어갔다. 임금을 상징하는 곳곳에 황색은 귀하게 쓰였다. 황칠나무는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식품화가 이루지기도 했다. 섬의 유일한 후박나무 군락지로 가려면 공사현장을 지나야 한다. 바로 청자타워 공사현장이다. 국내에서 가장 긴 짚라인이 설치될 예정인 청자타워는 얼마 후에는 볼 거리, 즐길 거리가 될 것이다. 공사중인 청자타워 뒤쪽 경사를 오르면 후박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300년된 군락지로 100여본이 빽빽이 자라 하늘을 덮고 있다. 과거에는 섬 전체에서 자생했으나 다 베어 남아있는 곳은 이곳 뿐이다. 후박나무 나무 껍질은 약재나 염료로 쓴다.

다시 바닷길로 길을 잡아 내려와 조금 걷다보면 망호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망호출렁다리가 나온다. 육지와 연결된 두 개의 출렁다리 중 나머지 하나다. 길이 715m로 경사진 게 특징이다. 출렁다리 옆에는 바다 낚시터가 자리잡고 있다. 섬의 반쪽 길이 잘 꾸민 길이라면, 나머지 길은 자연 그대로의 길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바다와는 다른 바다가 펼쳐진다. 호수같은 바다의 모습에 마음이 돌연 아득해진다. 수초에 반은 몸을 감춘 낚싯배가 찰랑대고, 마을이 펼쳐져 있다. 가우마을이다. 이곳에서 바다의 소리는 아기를 재우는 자장가처럼 낮고 맑고 부드럽다. 한옥펜션, 밀물펜션 등 숙박시설, 바다의 야경을 안주 삼아 즐길 어부 포차도 객을 반긴다. 자꾸 느려지는 발길을 다시 재촉해 걷다보면 황톳길이 나온다. 비가 와도 그닥 질퍽이지 않는 길이다. 오르락 내리락 바다를 옆에 끼고 걷다보면 절경이 펼쳐지는 지점들이 여럿 나와 탄성을 자아낸다. 이렇게 나머지 1km를 걸으면 출발지점, 저두 출렁다리로 돌아온다. 바닷바람이 다시 거칠어진다.

▶강진의 비밀의 정원, 백운동원림=‘남도답사 1번지’ 월출산에는 숨겨진 비밀의 정원이 있다. 담양 소쇄원과 보길도의 부용동과 함께 호남 3대 원림으로 불리는 백운동원림이다. 백운동 정원은 조선중기 처사 이담로가 조영한 전통 원림으로 성전면 월하리 안운마을 백운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강진읍에서 무위사 방향으로 20분 정도 가면 닿는다. 계곡을 따라 동백나무와 대나무, 비자나무 등 상록수림의 원시림처럼 빽빽한 숲은 12가지 절경을 숨겨놓았다. 좁은 동백나무 숲길을 지나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얽혀 세월을 가늠키 어려운 나무와 계곡, 처서가 나온다. 집 안에는 계곡의 물이 흘러 들었다가 빠져나가는 유상구곡이 조성돼 있다. 이 곳 다산에 의해 더욱 빛을 발한다. 유배의 고적함을 달래준 지음 혜장 스님의 이른 타계는 다산을 상심에 빠져들게 한다. 백운동원림을 물려받은 소유주이자 다산의 제자로 아들을 보낸 이덕희가 이런 다산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다산과 초의선사를 초청한다. 하룻밤을 유숙하며 원림을 구경한 다산은 돌아와서 절경이 눈에 선하다. 초의를 부른 다산은 원림의 풍경을 그리게 하고 같이 시문을 지었다. 그림과 시는 백운첩에 남아있다. 12승경의 제1경은 옥판봉, 월출산 구정봉의 서남쪽 봉우리다. 제2경은 산다경, 별서 정원에 들어가는 동백나무 숲의 작은 길을 이른다. 제3경은 백매오, 바위언덕 위에 심어둔 백그루의 홍매화다.

제4경은 단풍 빛이 비친 폭포의 홍옥같은 물방울, 제5경은 잔을 띄워 보낼 수 있는 아홉 굽이의 마당안 작은 물길, 여기에 푸른빛 절벽, 용 비늘처럼 생긴 붉은 소나무, 모란이 심어져 잇는 돌계단의 화단, 옥판봉이 바라보이는 창하벽 위의 정자와 별서 뒤편 늠름하게 하늘로 솟은 왕대나무 숲 등이다. 자연과 백운동 조영 공간이 적절한 배치를 이뤄 호남의 3대 정원으로 불린다.

세속의 벼슬이나 당파싸움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연에 귀의해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자 한 이담로의 별서정원은 터만 남아있던 것을 복원했다. 주변에 다원이 생기는 바람에 계곡물도 말랐지만 12승경의 한 자락을 느끼는데 부족함이 없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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