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취재X파일] ‘밴드’와 ‘퍼포머’ 사이의 어딘가…원더걸스가 갈 길은?
엔터테인먼트| 2015-08-04 10:19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걸그룹 원더걸스의 밴드 변신은 국내 아이돌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걸그룹 에이오에이(AOA)가 데뷔 초 잠시 밴드 콘셉트를 선보인 일이 있습니다만 별 재미를 못 봤죠. 이는 아이돌이 악기를 드는 모습을 마치 신성불가침 영역 침범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밴드의 연주력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들이 많은 한국에서 정작 밴드의 인기는 바닥이란 현실이 우습지만 말이죠.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거물급 아이돌이 밴드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파격 그 자체라고 할 만합니다.

걸그룹 원더걸스가 지난 3일 서울 한남동 언더스테이지에서 라이브를 선보이고 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지난 3일 오후 서울 한남동 언더스테이지에서 원더걸스의 정규 3집 ‘리부트(Reboot)’ 쇼케이스가 열렸습니다. 쇼케이스에 모인 기자들의 관심사는 멤버들의 연주력이었을 겁니다.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는 쇼케이스에 앞서 멤버 별 악기 연주 티저 영상을 차례로 공개해 화제를 불러일으켰죠. 원더걸스의 갑작스러운 밴드 변신을 향한 우려는 티저 영상과 함께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무대에서 어느 정도 수준의 연주를 보여줄 진 미지수였죠.

무대에 오른 멤버들은 먼저 밴드에 맞게 편곡한 히트곡 ‘텔미’와 ‘노바디’를 라이브로 선보였습니다. 기자의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연습을 많이 한 ‘스쿨밴드’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기자는 꽤 만족했습니다. 무대에서 라이브로 저 정도의 연주를 들려주려면 생각보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거든요. 선미는 “멤버들 모두 연습실을 박차고 뛰어나가 울기도 했다”고 말했는데 아마도 과장이 아닐 겁니다.

질의응답 시간에 기자는 멤버들에게 다소 아픈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미 대답을 예상하고 던진 질문이었죠. 이날 보여준 연주 역량으로 녹음은 어림없었거든요. “멤버들이 직접 녹음에 참여했나요?”. 멤버들의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 였습니다. 밴드는 자신의 곡을 직접 만들고 연주해 녹음까지 진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밴드가 왜 연주자들로 멤버를 구성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이날 원더걸스는 ‘밴드’보다는 ‘퍼포머’에 가까웠습니다. 

걸그룹 원더걸스가 지난 3일 서울 한남동 언더스테이지에서 라이브를 선보이고 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가 ‘밴드’ 원더걸스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멤버들의 고른 창작 참여 때문입니다. 멤버들은 타이틀곡 ‘아이 필 유(I Feel You)’를 제외한 앨범의 모든 수록곡에 작사ㆍ작곡ㆍ편곡으로 참여했죠. 특히 기자는 편곡에도 멤버들의 이름이 많이 보여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비록 공동 편곡자로 이름을 실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편곡에 참여했다는 것은 자신의 전공 악기뿐만 아니라 다른 악기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추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니까요. 작곡자가 꼭 좋은 연주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게다가 타이틀곡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의 만듦새가 상당한 편이어서 원더걸스의 음악적 미래가 무척 기대됩니다.

이날 원더걸스는 밴드 포맷이 1회성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성공 가능성은 여전히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실험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다른 걸그룹들이 변신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걸그룹들이 변신할 폭은 ‘섹시’ 아니면 ‘청순’ 밖에 없는데, ‘삼촌팬’들의 의리는 종잇장처럼 얇은 게 현실이니까요. 원더걸스가 ‘퍼포머’로라도 지속적으로 ‘밴드’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이유입니다. 일단 출발은 좋습니다. ‘아이 필 유’가 공개 이틀째인 4일 오전에도 주요 음원 차트 정상을 휩쓸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말이죠.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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