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
“영상자료 가치 알린 것에 보람” 이병훈 한국영상자료원장 퇴임 인터뷰
엔터테인먼트| 2015-09-24 00:03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6년이 훌쩍 지나갔네요. 한 마디로 시원해요.”

24일자로 임기가 끝나는 이병훈 한국영상자료원장(69)의 얼굴엔 웃음이 번졌다. 아쉬운 기색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병훈 원장은 한국영상자료원 설립 이래 최초로 연임에 성공, 이례적으로 6년이라는 긴 시간 자리를 지켰다. 이 원장은 ‘첫 임기 때 시작한 일을 깊이 있게 진행시켜 성과를 내라는 의미’로 연임을 받아들였다. 어느덧 퇴임을 앞둔 그는 “유실된 영상 자료가 돌아오고, 자료의 소중함이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병훈 원장이 부임한 2009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영상자료원이 일군 성과는 일일이 나열하기 벅찰 정도다. 미보유 희귀 한국 고전영화 188편을 발굴한 것은 물론, 현존 최고(最古) 한국영화인 ‘청춘의 십자로’를 문화재 등록하는 등, 폐기물로 사라질 뻔한 영상자료들에 그 가치를 돌려줬다. 향후 30년 간 영화필름 및 디지털영상콘텐츠 등을 보존할 수 있는 파주보존센터를 위한 예산도 확보, 건립이 진행 중이다. 보존 상태가 온전치 못한 고전영화를 재정비해 상영하는가 하면, 유튜브와 네이버를 통해 고전영화를 무료 서비스하는 등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사업들도 벌여 왔다. 덕분에 영상자료원을 찾는 관람객은 2011년 19만여 명에서 2014년 310만 명으로 15배 이상 뛰었다.

“잠자는 자료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껴요. 한편으론 마음이 쓰리기도 하죠. 필름은 적정 온도와 습도를 갖춘 곳에서 보관해야 하거든요. ‘저걸 깨끗이 관리했으면’ 싶기도 하고, ‘아직도 어딘가에 방치된 필름이 있을텐데’라는 생각도 들죠. 영상자료원은 1974년에 생겼지만, 영화 필름이 의무제출제가 된 것은 1996년부터예요. 이전 필름 보유율은 20% 미만이예요. 개인이 가지고 있다 처분해버린 필름도 많아요. 필름에서 은(銀) 성분을 추출하고 버리기도 했죠. 과거엔 극장에서 상영하고 나면 필름이 더이상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여유가 생기면서 영상 자료를 문화유산으로 생각하게 됐죠.”

한국영상자료원은 지난 7월, 해방 후 최초의 문예영화인 ‘해연’(1948, 감독 이규한)을 발굴, 언론에 공개해 이목을 끌었다. 2011년 일본 고베영화자료관이 고물상에서 수집해 보관해오던 것을 찾아오면서 세상 빛을 보게 됐다. 최초의 한국·홍콩 합작영화인 ‘이국정원’(1958, 감독 전창근)은 홍콩에서 먼 거리를 건너왔는데 사운드가 소실된 상태였다. 영상자료원은 성우들의 목소리와 밴드의 음악을 입혀 복원시켰고,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상영회에서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지난 4월에 90편이 넘는 미보유 필름을 기증 받았을 때, 원로 감독들에게 전화해서 소식을 전했더니 감격하시더라고요. 영상자료는 연출자 개인들에게도 의미있지만, 중요한 역사 유물이라는 점에서도 그 가치가 엄청나죠.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 등이 그대로 담겨 있으니까요. 세상이 바뀌어도 영화에는 그 당시 그 순간이 다 기록돼 있잖아요. 과거 선배들이 지금 세대 뿐 아니라 후대와도 소통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는 거죠. 제 후임으로 오실 분은 저보다 더 열심히 유실된 영화도 복원해주시고, 누구나 영상자료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이곳을 널리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