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수제에 빠진 입맛]“개성없는 음식은 싫다”…수제마니아들의 외침
뉴스종합| 2015-10-06 09:05
[헤럴드경제=오연주 기자] 주부 이현미(37) 씨는 장을 볼 때 어묵과 소시지는 꼭 수제 제품을 산다. 이 씨는 “맛의 차이가 확연한 것은 물론 아이들 먹일 거라서 합성첨가물도 적게 들어간 수제 식품을 고르는 편”이라며 “다소 가격이 비싸더라도 수제 음식은 신뢰가 가고,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재미도 있다”고 했다.

이 씨의 냉장고에는 기본적인 매실청, 오미자청 등은 물론 요즘 주목받는 청귤청까지 직접 만든 엑기스도 가득하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이제 곧 모과차를 만들 차례다. 그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더 어릴 때는 쿠키나 빵 종류도 많이 만들었다”며 “요즘에는 제주도 여행에서 감귤맥주를 마신 뒤 빠져든 수제맥주가 새로운 관심사”라고 했다. 

‘나만의 맛’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수제 마니아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음식에서도 개성시대를 추구하는 이들은 새로운 음식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삼진어묵을 만들고 있는 장면.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수제음식 마니아가 늘고 있다. 이 씨처럼 수제음식을 사고, 만드는 재미에 푹 빠진 이들은 나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는 수고를 번거로워하지 않고 즐긴다.

요즘 일상생활에서 수제음식으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은 수제청이나 수제잼 등이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들 식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는데 가격대가 비싸지 않아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과일청은 제조법이 간단한 것이 장점으로, 번거로운 과정을 최대한 줄여주기 위한 유통업계의 마케팅도 활발하다. 대형마트는 매실청 담그는 철이 되면 매실과 설탕, 담금주, 저장용기까지 세트로 구성해서 팔고, CJ제일제당은 냄비를 한참 저어야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전자레인지용 수제잼 만들기 세트를 지난 5월 내놓기도 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지 않은 수제음식은 품질은 물론 무엇보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맛’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취미로 베이킹을 시작했다가 주변 지인들의 주문을 받는 등 수제 케이크를 소규모로 판매도 하는 윤성희(38) 씨는 “경제적 이득보다 각종 기념일에 맞춰 구매한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아 더욱 보람이 있다”고 했다.요즘 수제케이크 전문점은 소위 쇼핑 핫플레이스라고 하는 곳에도 빠지지 않는다.

영양과 정성을 꽉 채운 수제도시락도 인기를 끄는데 수제도시락의 화려함이 정점을 찍는 것은 팬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보내는 이른바 ‘조공용’ 도시락이다. 바쁜 스케줄에 시달리는 우리 ‘오빠’들이 먹을 건데 일반 도시락 전문점 등에서 판매하는 평범한 도시락으로는 성에 안 차는 것이다.

수제음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놀이 혹은 재미(Fun)를 원하는 소비자들을 일컫는 플레이슈머(Playsumer)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도 있다. 남들과 다른 음식을 만들고 먹는 데서 오는 재미를 추구한다는 것.

이진상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음식 방송 프로그램은 먹는 행위 자체보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초점이 부각된 것들이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며 “플레이슈머들을 위해 최근의 레스토랑들은 주방의 벽을 통유리로 교체함으로써 만드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손님들이 직접 요리 재료를 고를 수 있게 하는 등 새로운 재미를 제공한다”라고 설명했다.

수제음식의 위력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는 획일화된 패스트푸드의 상징이었던 맥도날드가 프리미엄 수제버거 시그니처 버거를 출시한 것이다. 스타벅스도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나만의 음료’를 주문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이마트는 수제 소시지를 즉석에서 제조하는 매장을 운영한다.

수제음식 가운데 최근 가장 뜨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맥주다. 한국마이크로브루어리(microbreweryㆍ소규모 양조장)협회에 따르면 맥주 양조유통에 관한 주세법이 지난해 4월 소량 생산방식의 수제맥주(크래프트 비어)의 시중 유통이 가능해지는 방향으로 개정되면서 이태원과 신사동 등지에서 마이크로브루어리는 급속도로 증가 추세다.

‘나만의 맛’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수제 마니아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음식 뿐 아니라 술에서도 개성시대를 추구하는 이들은 새로운 주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수제맥주를 만들고 있는 장면.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수제맥주 마니아인 직장인 김동식(35) 씨는 수제맥주를 사 마시는 것을 넘어 최근에는 수제맥주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김 씨는 “수제맥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곳들도 많아 요즘 수제맥주가 유행은 유행이구나 실감했다”며 “집에서 나만의 맥주를 만드는 것이 새 취미생활이 됐다”고 했다.

가정에서 수제맥주를 만드는 홈브루잉(Homebrewing)족 증가에 따라 관련 제품도 늘어나는 추세다. G마켓에 따르면 올해 수제맥주키트, 맥주제조기 등 수제맥주 제조 관련 상품 매출은 꾸준히 늘어 1분기를 100으로 봤을 때 2분기 112, 3분기 141을 기록했다. G마켓 관계자는 “이태원 등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는 수제맥주는 최근 인기 예능프로그램에서 제조 과정이 소개되는 등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비용도 절약하고 나만의 레시피로 다양한 맛을 내는 맥주를 만들 수 있어 앞으로도 수요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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