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일반
ISA 선진국 日 “韓, 중도 인출 가능케 해야”
뉴스종합| 2015-11-09 17:48
 [도쿄(일본)=홍석희 기자] 한국보다 2년 먼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도입한 일본에서도 한국의 ISA 도입과 관련 ‘중도 인출을 가능케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도 인출이 필요한 사람은 부자가 아닌 가난한 서민일 개연성이 높다는 의미에서다.

지난 5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오사키 사다카즈 일본 금융청 금융심의회 위원은 “중도 인출이 가능토록 ISA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저소득자가 돈을 쓸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부유층은 그 돈이 아니라도 쓸 돈이 많다. 중도인출이 필요한 것은 부유층이 아닌 사람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5년 동안 팔지 못하게 묶어뒀을 경우 5년 후에 손실이 나게 되면 누가 책임을 지게 되겠냐”며 “5년 후에 반드시 이익을 본다는 보장이 없는데 인출을 못하게 하는 것은 안될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설명=오사키 사다카즈 일본 금융청 금융심의회 위원이 일본의 NISA 도입 상황과 한국 ISA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설명=일본의 한 커피전문점에 나붙은 구인광고. 시급 1000엔(약1만원)에 최대 2만5000엔(약25만원)의 교통비를 지급하겠다고 알리고 있다.

▶日 ‘투자에 답 있다’= 10일 일본 금융청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일본판 ISA(NISA) 계좌 수는 921만개다. 제도 실시 1년여만의 성과다. 일본 인구가 1억2700만명이고 일본의 평균 가족수가 4~5명인 점을 고려하면, 세집 건너 한집 꼴로 NISA 계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돈 많은’ 일본이 굳이 세제혜택까지 줘가면서 NISA를 도입한 것은 투자가 곧 국력이란 판단이 깔려있다.

NISA는 ‘아베노믹스’의 한 축, 그 가운데서도 투자 부문을 담당한다. 아베 총리가 각종 외교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집권 후 일본의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일본 국민들의 체감도 곳곳에서 감지됐다. 긴자와 신주쿠, 아카사카 등 번화가 거리도 활력이 넘쳤다. 단적으로 1만선 아래에 머물던 일본 니케이 지수가 2만선을 오르내리고 있는 것도 NISA 활성화에 보탬이 됐다.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 청년들은 여러군데 입사 합격을 한 뒤 회사를 골라가는 상황”이라며 “아르바이트 시급을 높이고, 교통비도 별도로 지원해야 사람을 구할 수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경기가 좋다는 얘기다.

연말을 맞아 NISA가입 계좌수도 급하게 늘고 있다는 증언도 나온다. 일본 증권사 관계자는 “연말 세제혜택을 받기 위해 젊은 30대의 계좌 개설 건수가 늘었다. 지난해말에도 같은 현상이 있었다”고 말했다. NISA계좌에 담기는 자금의 60% 가량은 펀드를 통해 주식시장으로 흘러든다. 절세와 함께 투자수익도 거둘 수 있는 일석이조의 투자상품인 셈이다.

일본 금융청은 현재 최장 10년으로 묶여있는 비과세 기한을 영구화 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부(富)의 세대 이전을 위해 조부모가 손자의 장래를 위해 장기 투자할 경우 비과세 혜택을 주는 ‘주니어 니사’도 내년 1월부터 실시한다. 단 18세 이전까지 자금 인출은 불가하다. 아츠히코 마츠무라 일본 신탁협회 매니저는 “주니어 니사와 비슷한 제도로 교육자금증여신탁제도와 결혼·양육자금 일괄증여비과세 제도가 있다”며 “자산의 세대 간 이전이 발생하면서 젊은 층에 여유가 생겼고 이는 소비 촉진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사진설명=한국과 일본, 영국의 ISA제도 비교

▶韓 곳곳 ‘지뢰’= ISA를 한국보다 먼저 도입한 일본은 제도 정착이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것에 비해 한국의 경우는 곳곳이 ‘지뢰밭’이다. ISA 가입을 위해선 ‘월급쟁이(근로소득자)’거나 ‘사장님(사업소득자)’이어야 한다. 주부나 농어민 등은 ISA를 만들 수 없다. 세제 혜택도 투자소득의 200만원까지만 비과세 되고, 초과분에 대해선 9%의 세금이 매겨진다. 중도 인출도 불가능하다.

자격제한과 혜택제한, 인출불가 등 세가지 악재가 한국판 ISA의 걸림돌로 지목되고 있다. 시장에선 벌써부터 ISA와 소득공제장기펀드(소장펀드)를 비교하면서 소장펀드가 훨씬 유리하다는 분석들이 쏟아진다. ISA는 수익이 났을 때에만 세제혜택이 있는 반면, 소장펀드는 가입과 동시에 세제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막차(소장펀드)가 첫차(ISA)보다 좋다는 얘기다.

한국의 ISA가 이처럼 각종 제한요건에 얽히고 섥혀 제대로 첫발을 떼기 어려운 것은 제도 도입 취지가 일본이나 영국과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ISA는 재형저축과 소장펀드 가입 시점이 올해말로 종료되면서 나온 ‘대체상품’ 성격이 짙다. 이에 비해 일본은 저축된 예금을 투자로 끌어들이는 것이, 영국은 과도하게 낮은 저축률을 높이는 것이 ISA를 도입한 이유다.

일본 금융청 관계자는 “일본NISA는 도입 시 부자감세에 대한 반대는 전혀 없었다. 모든 사람이 가입할 수 있고 한도 역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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