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분위기상 엄두도 못내
#. 서울의 한 중견기업의 사무직으로 일하던 김수현(36·여·가명) 씨는 7년 정도 다닌 회사를 최근 사직하기로 결심했다. 결혼한지 3년이 넘었지만 아직 아이가 생기지 않은 이유가 가장 컸다. 난임 시술을 받으려 해도 회사를 다니면서 병원 다니기가 사실상 어렵고, 가능하더라도 뒤에서 수근거릴게 뻔해 차라리 그만두자고 결정한 것이다.
바쁜 직장 생활과 스트레스 때문에 난임(難妊)으로 고통을 겪는 부부들이 늘고 있다.
2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난임 환자는 2007년 17만8000여명 수준에서 지난해 20만8000여명으로 7년새 16%가량 늘어났다.
국내 가임기 부부 7쌍 중 1쌍 정도는 난임을 겪고 있는 셈이다.
특히 과거보다 결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소문이 걱정돼 회사엔 공개적으로 지원 요청도 하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일부 기업에선 난임 휴가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 회사에선 말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라 난임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인식 전환과 제도적 지원 마련이 시급하단 지적이다.
난임 시술을 위해선 평균 8~10차례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충분한 휴식도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난임 휴가가 제도적으로 공식 신설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난임 휴가를 보장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지난 4월 발의됐다.
연간 90일 이내에서 휴가를 신청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나눠 사용하거나 의사의 진단에 따라 30일까지 기간을 연장하도록 했다.
또 기업이 난임휴가를 이유로 근로자에게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근로자가 난임 휴가를 마치고 복귀 시 전과 동일한 대우를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이라 통과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
일각에선 난임 휴가가 있는지 여부가 좋은 회사와 나쁜 회사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재작년부터 난임휴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기존 휴직제도가 출산 전후와 육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난임 여성을 위한 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기업에 다니는 강지현(32·여) 씨는 “우리회사엔 난임 휴가라고 정해진 건 없지만 의사진단서가 있으면 병명을 난임으로 적어서 병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원래 난임보단 불임(不妊)이 더 의학적으로 맞는 표현이다.
하지만 임신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어감이 강해 얼마 전부턴 난임이란 말로 대체되고 있다.
난임은 피임하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한 지 1년이 지났는데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35세 이상 여성의 경우 이보다 기간이 줄어 6개월간 임신이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를 가리킨다.
서경원 기자/gi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