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남 검찰소환 소식에 묵묵
“내가 귀신이 씌였지”한탄
법에 따라 엄정수사 수시강조
군정을 종식시키고 문민정부를 연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중에 자기 가족과 측근의 비리를 단죄하도록 용인한 첫 대통령이다. 전직 대통령 당사자를 단죄한 첫 대통령이기도 했다. 현직에 있음에도 아들을 구속시키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김 전 대통령의 모습에서 검찰에 대한 소신과 철학을 읽을 수 있다.
사실 차남 김현철씨의 알선수재 혐의가 최종 무죄 선고되면서, 다소 무리한 기소라는 지적이 일었다. 수사 초기부터 ‘표적 수사’ 논란이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은 평소 자신을 극진히 보좌하고 효도하던 현철씨의 소환 소식을 듣고 “내가 귀신이 씌였지”라면서 묵묵히 검찰 행보를 지켜봤다.
1997년 1월 한보사건이 터지자 야당에서 현철씨가 한보공장에 간 적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는 현철씨를 한보사건의 ‘몸통’으로 오인하는 빌미가 됐다. 하지만 현철씨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몸통을 규명하라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대검 중수부장이 전격교체된다.
새 수사팀은 한보와 현철씨의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현철씨 주변을 털어 이른바 ‘별건’으로, 현철씨가 친구처럼 지내는 D기업 사장으로부터 오랜기간에 걸쳐 총 60여억원을 받은 사실을 밝혀낸다.
결론적으로 대가성 없는 후원금이었기에 알선수재 혐의는 무죄 선고되고, 받은 돈에 대한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는 지엽적인 혐의만 유죄로 인정됐다.
김 대통령은 당시 아들이 검찰에 불려갈 때 ‘성역없는 수사’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단호함을 밝힌 다음엔 집무실 한켠에서 장탄식을 내뱉곤 했다고 참모들은 전했다.
김대통령은 아들이 구속된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땀흘려 일하고 있는 모든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과 실망을 준데 대해 다시한번 깊은 유감과 사죄를 표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부정부패 단죄에 성역이 있을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또 ‘대통령의 자식이라도 책임질 일이 있다면 당연히 사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으며, ‘앞으로도 부정과 비리에 대해서는 관련자의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법에 따라 엄격하고 단호하게 처단할 것’이라고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갖고 있었던 수사기관에 대한 독립성과 믿음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강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김 전 대통령의 이같은 소신과 철학 때문인지, 문민정부는 장학로 전 실장 이외에 주변인물의 비리가 거의 없는, ‘측근비리 최소 정권’으로도 기록되고 있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