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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업계 동침…배우 키우다 제작하고, 제작하다 배우 키우고, 왜?
엔터테인먼트| 2016-02-10 08:10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엔터업계의 ‘겸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연예기획사는 제작을 겸하고, 제작사는 매니지먼트를 겸하며 덩치를 키우는 중이다.

이름만으로 쟁쟁한 스타들이 소속된 매니지먼트사들이 요즘 대단한 드라마들을 내놓고 있다. 김윤석 유해진 주원이 소속된 심 엔터테인먼트(SBS ‘가면’ 제작), 지진희 이지아 안재현이 소속된 HB엔터테인먼트(SBS ‘별에서 온 그대’, ‘용팔이’), 이미연 김현주가 소속된 씨그널 엔터테인먼트(JTBC ‘송곳’, ‘냉장고를 부탁해’, 엠넷 ‘프로듀스101’)는 배우 매니지먼트가 제작을 겸하는 눈에 띄는 사례다. 장혁 김우빈 소속사 IHQ는 겸업으로 성공해 음반사업으로 확장하고, 케이블 채널까지 인수한 강자다. 


가요기획사에서의 겸업은 더 흔하다. 아이돌그룹 씨엔블루 FT아일랜드 AOA는 물론 방송인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 등이 소속된 FNC엔터테인먼트 등의 매니지먼트사가 제작사(KBS2 ‘후아유-학교2015’ 제작)를 겸하고 있으며, 빅뱅 2NE1 차승원 최지우가 소속된 YG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아이유 이준기 주연의 ‘보보경심:려’를 통해 처음으로 드라마 제작 투자에 나섰다. 자회사를 통한 제작 사례도 많다. SM엔터테인먼트와 배용준 소속사 키이스트는 각각 자회사 SM C&C와 콘텐츠K를 통해 제작을 겸하고 있다. 콘텐츠제작사 초록뱀미디어는 자회사로 연예기획사를 두고 있다.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다. 다만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사례가 늘어난 부분에 한해 업계 관계자들은 ‘차이나머니’의 영향을 이유로 먼저 들었다. “지난해부터 밀려들기 시작한 중국 자본의 투자를 받아 덩치를 키운 엔터사들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규모가 다른 중국 자본의 투자를 받은 국내 굴지의 제작사와 매니지먼트사는 분리돼있던 업무를 한 데 모아 다양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중국 자본의 연이은 투자를 받으며 음악, 매니지먼트, 제작사를 인수 합병한 씨그널엔터테인먼트, 김수현 공효진 주연의 ‘프로듀사’(KBS2), 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SBS)를 제작한 초록뱀미디어(SH엔터테인먼트 인수), FNC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이다.

‘차이나머니’의 유입으로 눈에 띄는 사례가 늘었으나, 엔터업계는 대대로 서로의 영역을 호시탐탐 넘봤던 게 사실이다. 톱배우가 소속된 연예기획사 대표는 “남의 떡이 더 커보이기 때문”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연기사 회사는 매니지먼트 만으로, 제작사는 제작만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희박하다”는 것이다.

▶ 제작사는 왜…“마이너스 구조가 된 드라마 시장”= 현재 국내 배우 매니지먼트사는 총 150여개, 제작사는 100여개에 달한다.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든 상황에서 내수시장을 통해 영업이익을 내는 것은 점차 어려워진 상황이다.

콘텐츠 제작사들의 상황이 특히나 좋지 않다. 중국 자본의 투자를 받은 대형제작사와는 달리 많은 중소 제작사들은 현재 "일 년에 한 작품을 제작하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제작이 활발한 회사는 현재 30군데 안팎 정도다”라며 “제작사의 자금 회전률은 2~3년 주기다. 일 년에 한 편 만들면 다행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업계에선 메이저 상위 10% 이내의 제작사만이 1년에 두 편 정도의 드라마를 제작한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일 년 내내 비용을 쓰며 제작을 해도 돈이 되지 않는다. 마이너스 구조가 고착됐다”며 “현재 70%에 가까운 드라마 제작사가 적자 구조”라고 설명했다. 


“드라마 세 편을 만들어 한 편만 잘 되도” 제작사가 알아서 굴러가던 시절이 지났다. 제작비는 편당 4억~4억 5000만원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사는 제작사에 50% 가량의 제작비를 제공하고, 저작권을 방송사에 귀속시킨다. 드라마의 시청률이 잘 나와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나도 “돈을 버는 것은 배우들의 몫”이라는 인식 역시 팽배하다.

드라마 제작사들이 매니지먼트에 손을 대는 이유는 여기에서 나왔다. “지난해부터 상황이 악화된 이후 제작사 사이에선 새로운 수익구조의 필요성이 커졌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신인배우를 키워 스타까지 만드는 경우는 다를 수 있지만, 매니지먼트의 경우 제작보다 손실 가능성이 적다”라며 “제작비에서 오는 리스크를 줄이려는 노력의 차원에서 매니지먼트를 운영하는 사례가 많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제작과 매니지먼트를 겸한다고 자사 배우를 드라마에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배우를 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상당한 장점”이라며 “또한 회당 5000만원의 배우를 키우면 어느 정도 기대수익이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톱배우들이 대거 소속된 연예기획사 대표에 따르면 실제로 매니지먼트의 자금 회전률은 제작사에 비해 좋은 편이다. 그는 “일 년에 많게는 두세 작품을 하면 단기간 자금 회전이 수월하고, 자금 운영을 통해 경영 시너지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 매니지먼트는 왜…“상장붐, 안전장치”=매니지먼트 입장에서 제작을 겸하는 데에는 현재의 “엔터업계 상장붐이 일조했다”는 시각도 있다. 

국내 연예기획사 최초로 상장한 SM엔터테인먼트 이후 가요기획사와 제작사의 코스닥 상장이 줄을 이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이후 국내 엔터업계에는 6~7년 주기로 상장붐이 일었고, 현재가 이 같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 숱한 상장붐 속에 배우 매니지먼트의 코스닥 직상장 사례가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9월 심엔터테인먼트가 배우 매니지먼트 최초로 코스닥 시장에 직상장했다. 심엔터테인먼트의 경우 2008년 tvN 드라마 ‘맞짱’, 2013년 영화 ‘캐치미’를 제작한 이후 지난해 SBS 드라마 ‘가면’, 영화 ‘그놈이다’를 제작했다. 올해엔 MBC에브리원 ‘툰드라쇼2’와 영화 ‘찌질의 역사’를 제작한다. 심엔터테인먼트는 신인배우 발굴과 육성 능력에 탁월한 노하우를 발휘하고 있지만, 배우 매니지먼트 최초로 상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제작’에 있었다. 


매니지먼트의 경우 가요기획사는 아이돌그룹을 키워 데뷔시키는 과정까지를 ‘노하우’로 인정받고 있다. 발굴, 트레이닝, 제작, 홍보 등 전 과정에 더해 음반 유통까지 겸하니 하나의 시스템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셈이다. 그러나 배우 매니지먼트는 사정이 다르다. 콘텐츠 제작을 겸해야 코스닥 시장에 나갈 수 있다. 심엔터의 상장 배경에도 그간 공동제작 등을 통해 노하우를 구축했고, 제작역량을 발휘해 매출구조를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엔터테인먼트사가 상장을 하는 이유는 ‘기업의 투명성’을 인정받아 새로운 투자 자금을 유치한다는 것이다. 심엔터테인먼트는 이번 상장으로 150억원 가량의 공모 자금을 확보했다.

배우 매니지먼트가 제작을 겸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배우 기획사가 가진 특수성에 있다. 배우 전문 연예기획사의 한 대표는 “배우 매니지먼트의 경우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이 콘텐츠이기 때문에 특정 배우들에게 매출 의존도가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가요기획사 관계자들은 그러나 “가요기획사의 경우 아이돌그룹 멤버 한 명은 하나의 앨범을 제작하는 데에 필요한 재료의 일부이지, 개개인이 콘텐츠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이유로 “배우 매니지먼트의 경우 스타를 발굴해 키워도 회사를 떠나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어 안전장치를 마련하려는 차원에서 제작 쪽에 눈을 돌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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