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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포비아 논쟁②] 트랜스젠더는 죽여도 된다? ‘패닉 방어 전략’ 아시나요
뉴스종합| 2016-03-02 16:01
[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 동거녀가 있지만 트랜스젠더도 가리지 않는 박모(29)씨는 2010년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A(당시 24세)씨를 만나 교제했다. 남성의 신체로 태어난 A씨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스스로 여성이라고 여기는 트랜스젠더다. 외부성기 수술은 아직 하지 않았다. 박씨는 A씨와 구강ㆍ항문 성교를 한 뒤 말다툼 끝에 돈을 뺏고 살해했다. 재판에 넘겨진 박씨는 “A씨가 남장여자라는 사실(외부 성기를 발견했다는 의미)을 뒤늦게 알고 이에 격분해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고 말했다.


‘대구 트랜스젠더 살인사건’은 한국 사법 사상 처음으로 기록된 ‘패닉 방어 전략’이 사용된 사건이다. ‘패닉 방어 전략’이란 피해자가 흔히 성전환술로 알려진 ‘성확정술’을 하기 전 호르몬투여 단계에 있는 ‘트랜스젠더’일 때, 가해자가 외부 성기를 발견하고 놀라 홧김에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변론 기법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범죄’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범죄의 합리화를 꾀한다.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꿔 버린다. 이에 미국에선 법안으로 ‘패닉 방어 전략’을 금지하기도 한다. 한국에선 생소하지만 앞으로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패닉 방어 전략은 미국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다. 2002년 그웬 아로조(당시 17세)는 매짓슨과 교제했다. 매짓슨은 그웬의 외부 남성 성기를 발견하곤 친구들과 함께 둔기 등으로 폭행해 살해했다. 매짓슨의 변호인은 아로조가 트랜스젠더임을 알고 패닉 상태가 돼 살인했기에 고의가 아닌 과실치사라며 감형을 주장했다.

‘패닉 방어 전략’에 따르면 트랜스젠더가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밝히지 않는 행위 자체가 다른 사람을 속이는 사기에 해당한다. 바로 이런 기만 행동이 발견됐을 때 가해자는 분노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 자신이 이성애자임을 증명하고, 남성성을 보이는 수단으로 폭력적인 성향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결국 패닉 상태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살인을 했다며 살인 행위를 정당화한다. 살인이 성적 접근에 대한 정당방위라고 항변한다. 결과적으로 가해자는 “오히려 내가 진짜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러한 패닉 방어 전략이 사회가 갖고 있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대구 트랜스젠더 살인사건에서 박씨는 ‘상대방이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살인을 저지를 만큼 충격적인 일이다’는 생각을 갖고 스스로를 방어했다.


실제로 이러한 인식은 한국 사회에서 상당부분 공유하고 있다. 당시 사건이 알려지자 관련 기사의 적잖은 댓글은 “트랜스젠더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으면 안 되니까 이마에 표식을 새겨라”, “결혼하고 난 뒤에 상대방이 트랜스젠더란 점을 알게 되면 진짜 충격적이고 끔찍하겠다”는 내용이었고, 상당히 많은 공감을 받았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한결은 ‘성적 소수자 대상 혐오 폭력의 구조에 대한 연구’를 통해 “패닉 방어는 자신의 남성성을 입증하려는 가해자의 노력과 이런 노력을 요구하는 사회적 태도가 공모한 변론 전략이다”며 “이런 태도는 트랜스젠더라면 무조건 커밍아웃해야 할 존재로 만든다”고 했다.

이어 “비록 미국에선 패닉 방어 전략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지만 이를 피해가는 변론이 나오는 등 혐오 폭력을 충분히 다룰 수 없는 만큼 사회구조적 혐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jin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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