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설탕전쟁 초등학교 앞 가보니] “맛있으면 그만이쥬”…설탕에 빠진‘ 그린푸드존’
헤럴드경제| 2016-04-07 12:01
그린푸드존 식품조리·판매업소 3만4383곳 중
‘고열량 저영양’ 식품 안파는 곳 7.8% 불과
초등학생 하루 2~3번 불량식품 간식



지난 6일 오후 서울 도봉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 문구점. 지나다니는 학생들이 끊임없이 이곳에 들러 각종 간식을 사서 나온다.

문구점 안에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과자 수십종이 진열돼있다. 사탕과 젤리, 초콜릿류가 대부분이고 가격은 주로 200~300원으로 저렴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내놓은 ‘고열량ㆍ저영양 식품 알림e’ 애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한 결과 수십종 과자 대부분이 ‘고열량ㆍ저영양’ 식품으로 나타났다. 당류 등 정확한 영양성분 표시가 되어있지 않은 제품들도 상당수였다.

이 문구점에서 사탕류를 사들고 나온 초등학교 3학년 이모(9) 군은 “하루에 2~3번씩은 사먹는다”며 “부모님은 이 썩고 몸에 나쁘다고 못먹게 해 아예 먹는다는 얘기를 안한다”고 했다.

이 군이 좋아하는 얇은 파이프 모양의 설탕 과자. 이 과자의 1회 제공량(10g)에는 당류가 10g 함유돼있다. 단백질은 전혀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기준상 고열량 저영양 식품에 해당된다. 식약처는 간식용 어린이 기호식품의 경우 1회 제공량당 당류 17g을 초과하고, 단백질 2g 미만인 식품인 경우 등을 고열량 저영양 식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1회 제공량이 30g미만일 경우에는 30g으로 환산해 적용한다.

이곳에서 만난 정모(9) 군도 “불량식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맛있잖아요”라고 했다.

7일 정부가 국민 건강을 위해 당 섭취를 줄이는 종합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학교 앞 ‘그린푸드존’(Green Food Zoneㆍ어린이 식품안전보호구역)에서 이같은 ‘설탕 범벅’ 식품들이 자취를 감출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불량식품 근절을 표방해온 정부가 당 섭취 감소를 목표로 처음 추진하는 것이어서, 학교 앞 먹거리에도 일대 변화가 있을지 시선이 쏠리는 것이다.

그린푸드존은 학교와 학교 주변 200m 내 식품조리ㆍ판매업소에서 어린이의 건강을 해치는 유해식품 등의 판매 여부를 점검하는 구역이다. 그러나 식약처가 고시한 ‘고열량 저영양 식품’ 판매는 ‘우수판매업소’로 지정되지 않는 이상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아 실효성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식약처에 따르면 전국 그린푸드존에 있는 3만4383곳(2015년 기준)의 식품조리ㆍ판매업소 가운데 ‘고열량 저영양 식품’ 등을 팔지 못하도록 지정된 ‘우수판매업소’는 7.8%(2698개소)에 불과하다. 나머지 92.2%의 업소에서는 고열량 저영양 식품을 팔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실제 기자가 돌아본 그린푸드존 내 상당수 문구점과 마트 업주들은 그린푸드존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 업주는 “꼬마 손님들을 상대로 작은 장사를 하는데, 그린푸드존 얘기는 처음 들었다”며 “내 새끼 생각해서라도 아이들 몸에 나쁜 것을 판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른 업주는 “내가 파는 것이 식약처 기준 불량식품인지 어떤지 잘 모르는 게 현실”이라며 “내 양심을 판 적은 없고, 명확하게 가이드라인을 홍보해준다면 지킬 용의가 있다”고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업주들 입장에서는 우수판매업소로 지정돼 인센티브를 받는 것보다 고열량 저영양 식품을 팔지 못해 감수해야할 경제적 손실이 더 크다고 느끼고 있다”며 “올해 법을 개정해 지원 범위를 확대했지만 아직까지도 참여가 저조한 게 현실”이라고 인정했다.

배두헌ㆍ고도예ㆍ구민정ㆍ유오상 기자/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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