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명소
무적해병 낳은 펀치볼엔…쌉싸래한 곰취·금낭화가 지천
라이프| 2016-05-03 11:17
강원도 양구 ‘펀치볼’ 한반도 정중앙 위치
일교차 커 명품 6년근 인삼 재배로 유명세

철분·탄산가스 풍부한 후곡 약수터
원앙새 집단 서식하는 파로호 주변
봄엔 진달래·철쭉-가을엔 단풍 천국

신원확인 거쳐야 들어가는 두타연엔
영화에서 본듯한 한반도 지도 폭포가…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고 했던가. 한국전쟁 격전지였던 강원도 양구 민간인 통제구역 펀치볼 가는 길가에는 양구군의 상징 살구꽃이 피어있었다.

청정자연을 간직한 평화와 생태의 본고장이기에 국민 모두의 고향 같고, 북녘 출신 실향민이 닿을 수 있는 고향 가장 가까운 곳이다.

펀치볼의 2016년 봄은 평화로웠다.

많은 일조량, 변화무쌍한 기상에다 개발의 손길을 피한 청정 토양 때문에 인삼은 북상해 양구 펀치볼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을지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펀치볼은 푸른색 차양을 한 인삼밭의 건강한 향내와 시골 어머니의 인정 같은 곰취 향으로 가득하다.



금강산 제7봉 가칠봉 등 해발 1100~1200m 네 개의 산으로 둘러쳐진 펀치볼은 누가 보아도 거대한 호수의 물이 빠진 듯한 모습니다. 실제 이곳 산 중턱에서는 민물조개 껍데기가 발견된다.

‘바다 같은 호수’를 가진 이 일대 고을의 원래 이름 해안(海岸)이었다. 오목하게 패인 항아리 모양의 펀치볼 남북 가장자리인 대암산-을지전망대의 직선 길이가 13~15㎞이니, 엄청난 양의 물을 품은 호수였을 것이다.



지질 및 풍화작용을 거쳐 수 백 년 전 이곳의 물이 빠지자 습지에 뱀이 창궐한다. 이때 한 선지자가 뱀의 상극인 돼지를 키워보라고 충고했다. 돼지는 뱀을 잘 먹을 뿐더러, 뱀이 공격해도 두터운 지방층 때문에 독이 퍼지지 않는다는데 착안했다. 돼지 사육이 급증하면서 마을이름은 ‘돼지해’자를 써 해안(亥岸)이 되고, 돼지 때문에 마을이 평온해졌다는 뜻으로 ‘편안할 안’을 넣어 오늘의 해안(亥安)으로 바뀌었다.

한국전쟁 때 동부전선 취재를 왔던 UN군 종군기자가 자기 고향에서 잔치 때 보던 온갖 과일과 술을 섞어 담은 사발을 닮았다고 해서 펀치볼(Punch Bowl)이라고 불렀다.

펀치볼 남서쪽 방패막이인 도솔산은 ‘무적해병’이라는 닉네임을 낳았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16일 동안 이 일대 24개 고지를 점령하자 이승만 대통령이 헬기 타고 와서 “과연 무적의 해병”이라고 칭찬한데서 유래됐다.

종군기자 중 유일한 여성이었던 마가렛 허긴스가 패망 직전에서 38선 돌파까지 일궈낸 한국군의 대역전드라마를 보고 “귀신도 잡겠다”는 기사를 쓰면서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말도 나왔다.

6월이 되면 이곳에서는 승전을 기념하는 ‘작은 국군의 날’행사가 열린다. 국군이 낙하산 타고 내려와 전투식량을 주민에게 나눠주는 퍼포먼스도 열린다.

지금 펀치볼은 영화 ‘고지전’의 실제무대 가칠산 주둔 국군의 듬직한 방위 아래, 곰취 채취, 시래기(무우)와 인삼, 감자, 포도, 복숭아, 사과 재배가 한창이다. 거대한 약초ㆍ화채 그릇이다.

강원 도민들이 “양구에 가면 10년 젊어 진다”고 하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청정 환경과 보약 같은 로컬푸드, 자족하는 이웃들의 마음 때문이다.

군인가족인 신현숙 문화해설사는 “LPGA 선수들이 애용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세계적인 고급 인삼 가공제품을 만들 때 6년근 인삼만 납품할 수 있는데,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과거의 인삼 집산지는 6년을 버티기가 어려워졌지만, 일교차가 큰 양구에서는 인삼뿌리가 6년 이상을 능히 버틴다”고 자랑한다.

양구와 관광 협력 MOU를 체결한 한국관광조합(회장 이정환), 영진대팸투어단버스에 전창범 양구군수가 탑승하더니 일일가이드를 자청한다. 전 군수는 양구가 한반도 정중앙, 즉 배꼽이라는 점에서, 배꼽(벨리)댄스 동호인 단체인 대한실용무용총연맹 회장을 겸하고 있다.

펀치볼에서 양구읍내 쪽으로 돌상령로를 따라 내려간 뒤 남동로에 이르면 양구 8경중 제4경인 광치계곡 못 미쳐 철분이 흠뻑 느껴지는 신비의 약수 ‘후곡 약수터’를 만난다. 양구 제7경인 후곡약수터는 노인이 마시다 젊은이가 되어 지팡이를 잊은 채 금강산에 올랐다는 망장천에 비유된다. 망장천이 젊음을 준다면, 후곡약수는 현재의 병을 씻어주는 격이라고 한다. 30여명의 관광조합 일행은 약수를 마신 뒤 기분 좋게 소주 한잔 들이키고 이튿날 다시 약수 두 사발을 마시니 몸이 개운하더라고 입을 모았다. 철분과 불소 뿐 만 아니라 탄산가스도 풍부해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가 있음은 의학적으로 입증됐다고 했다.

이곳에 ‘청춘 양구 자연치유센터’가 있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 여행 오는 사람들의 안식처요, 양구의 온갖 생태를 체험하는 캠프촌이다.

양구읍내를 지나 화천 쪽으로 가다보면 파로호를 만난다. 중공군과 연합군의 격전지였던 파로호는 이제 공원이 됐다. 경관도 일품이고 석기시대 유물이 잘 보존됐으며, 잉어, 붕어 등 각종 담수어가 풍부해 전국 낚시터로 각광을 받는다. 최근 천연기념물인 원앙새의 집단 서식지가 파로호 주변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파로호 동쪽에는 국토를 수호한다는 고장이라는 의미의 한반도 섬이 조성돼 있다. 한반도 섬과 서쪽의 동수리는 지프라인으로 연결돼 레저를 즐길 수 있도록 꾸몄다.

파로호 남쪽의 양구 제3경 사명산은 접경지가 아닌 평화지대의 전망대 같은 곳이다. 양구, 화천, 춘천 일대와 멀리 인제군 4개 고을을 선명하게 조망할 수 있기에 사명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가을에는 단풍이 절경이며 겨울 사명산은 ‘신선의 고향’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파로호에서 북쪽으로 가다 방산면사무소를 지나면 고려조선 백자의 원고향이 양구임을 알리는 백자박물관이 있다. 양구 백토는 불순물이 적고 철분함유율과 백색도가 높아 조선시대 왕실 백자의 주원료였다. 채굴된 백토는 주로 물길 위 뗏목을 이용해 봄과 가을 두번 운송됐다. 1391년 이성계 집권 이전 만들어진 대권(大權) 기원 백자(이성계 발원사리구)에는 생산지가 양구 방산임을 명기하고 있다. 관광객이 만든 백자를 구워 집으로 배송해주는 백자체험 서비스도 해준다.

한국관광조합과 양구군, 영진대학 간 산학관 협력 MOU 체결, 서울 당산1동-양구읍 간 자매결연을 성사시킨 팸투어단은 두타연으로 향하는 던 중 이목정 대대 앞에서 자식 같은 경계병이 버스 위에 오르자 다정한 미소와 함께 격려의 말을 건넨다. 샤론교회 최규명 목사는 분단 상황 해소를 기원하는 즉석 기도를 주재했다.

이목정은 전쟁 이전 시절 배나무 정자가 놓여 양구 어르신들이 한가로이 청정 산천을 감상하던 곳인데, 지금은 우리의 믿음직한 아들이 부모를 지키는 곳이 되었다.

간단한 신원확인 절차를 거친 뒤 10분가량 버스로 이동한 뒤 도착한 두타연은 50여 년 간 인적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자연 보고이다. 영화‘고지전’에서 본 듯한 계곡 사이로 트레킹 족이 지나고 두타연 전망대에 이르러 한반도 지도 모양의 물보라가 일어난다. 산양과 열목어 등 천연기념물의 서식지인데 차장 밖으로 산양과 노루를 자주 볼 수 있다.

양구가 고향인 이수근 화가, 이해인 시인의 기념관, 썸 타는 연인이 입맞춤 할 듯 말듯 한 모양새의 ‘키스바위’, 원시림 속의 무릉도원으로 불리는 ‘파서탕’, 6만 여 평 규모의 생태식물원, 동부전선 유일의 남침용 침투로인 ‘제4땅굴’도 빼놓을 수 없는 문화ㆍ생태ㆍ안보관광 자원이다.

살구꽃이 곧 지면 함박꽃, 바람꽃, 처녀치마, 금낭화가 늦봄까지 반기고, 여름이 되면 구름패랭이꽃, 꽃며느리밥풀, 하늘나리, 멍석딸기가 꽃을 피운다. 이어 가을에 물매화, 구절초, 금강초롱, 용담, 노란물봉선화가 뒤덮는 양구는 청정 화원이기도 하다. 살구꽃에 이어 함박꽃 피는 양구도 고향 같고, 하늘나리, 금강초롱 핀 가을 양구 역시 건강하고 평화로운 웰빙의 고향이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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