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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우승 레스터시티…흙수저 외인구단의 기적
엔터테인먼트| 2016-05-03 11:45
오전엔 짐꾼 오후엔 축구장
주급 5만원 8부리그 출신의 반란
톰행크스 17만원베팅 8억잭팟



그들은 밑바닥 인생, 이른바 흙수저였다. 가난은 벗어나기 힘들었고 좋아하는 축구도 실력이 변변찮았다. 오전엔 치료용 부목을 만드는 공장서 짐꾼으로 일했고, 공장일이 끝나면 축구 연습장으로 달려갔다. 주급 30파운드(약 5만원)의 잉글랜드 축구 8부 리그 출신. 동료들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생들의 구단’은 그래서 올시즌 우승확률이 고작 5000분의 1이었다. 하지만 0.02%의 가능성만으로도 기적은 탄생했다. 마치 축구판 ‘공포의 외인구단’을 연상케한다. 하지만 이것은 만화가 아니다. 흙수저들이 9개월 동안 구르고 달리며 보여준 살아있는 현실이다.

레스터 시티가 창단 132년만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첫 우승의 기적을 일궜다.

레스터는 3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스탬퍼드 브릿지에서 열린 2015-2016 EPL 36라운드 경기에서 2위 토트넘이 손흥민의 리그 3호골에도 불구하고 첼시와 2-2로 비기면서 우승을 확정했다.

영국 BBC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에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했고 데일리메일은 “스포츠의 가장 위대한 동화가 완성됐다”고 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SNS에 “정말로 놀랍고 가치있는 우승”이라며 축하했다. 전 세계가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 레스터를 연고로 한 축구팀의 동화같은 성공 스토리에 흥분했다.

1884년 창단한 레스터는 지난 시즌 하위권을 맴돌며 2부 강등을 걱정하는 처지였다. 주전 11명의 이적료를 다 합해도 약 420억원. 손흥민의 토트넘 이적료 400억원과 비슷하다. 때문에 올시즌 개막 전 도박사들이 점친 우승확률은 5000분의 1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이탈리아 출신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5) 감독이 부임한 후 전혀 다른 팀이 됐다.

라니에리 역시 30년 지도자 생활에서 1부리그 우승 경험이 없었다. 라니에리는 언더독을 위한 ‘맞춤 전략’으로 팀을 업그레이드했다. 짜임새 있는 수비 후 빠른 역습을 하는 것. 공을 뺏고 빠르게 공격하라고 주문했다. 기술이 뛰어나지 않은 선수들에게 효과적이었다. 주전들이 모두 박지성같은 선수가 됐고, 이는 성적으로 이어졌다. 라니에리 감독은 또 “무실점 승리를 하면 피자를 쏘겠다”고 공언한 뒤 작년 10월 크리스털 팰리스전(1-0 승)이 끝나고 선수단에 피자를 돌렸다. 적절한 동기부여와 계단식 목표 제시. ‘평균 이하’ 선수들을 위대한 팀의 구성원으로 만든 리더십이었다. 공장 짐꾼 출신인 제이미 바디(22골ㆍ득점 3위), 프랑스 빈민가 출신 리야드 마레즈(17골 11어시스트)도 우승 주역이다. 무명 선수들이 스타 군단을 하나둘씩 무너뜨리는 모습에 전 세계 축구팬들이 열광하고 감동했다.

레스터는 TV 중계권, 스폰서십 계약, 입장권 수익 등으로 무려 2500억 원의 돈방석에 앉을 전망이다. 반면 베팅업체 윌리엄힐은 200억원대 손실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워낙 우승 배당률이 컸던 탓에 출혈이 불가피해졌다. 레스터 우승에 베팅한 사람은 25명이었는데, 이 가운데는 영화배우 톰 행크스도 있다. 17만 원을 건 행크스는 약 8억3000만원의 대박을 터뜨리게 됐다.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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