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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치]내일은 슈퍼리치(36) ‘집밥’ 식재료 배달로 133억원 유치…29세 女사업가의 도전
뉴스종합| 2016-08-27 09:05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천예선 기자ㆍ이채윤 학생기자] TV속 유명 셰프들은 간단한 재료로 환상의 요리를 척척 해낸다. 레시피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러나 막상 조리대 앞에 서면 눈앞이 깜깜해지는 초짜들이 수두룩하다. 오죽하면 ‘요리 못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따로 생겼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셰프들이 쓰는 재료와 조리과정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오늘 저녁메뉴를 고른 후 셰프들이 쓰는 식자재와 레시피를 그대로 집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냉장고에 적합한 재료가 있는지 없는지, 메뉴에 맞는 양념이 있는지 없는지 찾아볼 필요도 없이 말이다.
고블이 저녁메뉴로 배달하는 바비큐치킨과 치즈 브로콜리 콜스로우

이같은 발상으로 대박을 터뜨린 미국의 스타트업이 있다. 2010년 캘리포니아 주에서 탄생한 ‘고블(Gobble)’이다. ‘게걸스럽게 먹다’란 뜻의 ‘고블’은 창업 6년 만에 벤처캐피털 및 투자거물 22곳으로부터 총 1195만달러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우리 돈 133억 5412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오늘 뭐 먹지?” 답은 ‘웰빙 집밥’=고블의 사업아이템은 29세 여성 창업주 오시마 가그(Ooshma Garg)의 실제 생활에서 기인했다. 가그는 창업 당시 스탠포드대를 다니면서 회사일을 병행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활은 빡빡하기 그지 없었다. 하루 16~18시간을 일해야 하는 날이 태반이었다. 식사는 정크푸드와 테이크아웃 음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손수 만든 요리를 중시하는 인도계 가정에 자란 가그에게 ‘때우기식’ 음식은 고역이었다. 건강이 악화되는 것은 불보듯 뻔했다. ‘집밥’을 갈구하던 가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바쁜 현대인들을 위한 편리하고도 건강에 좋은 배달서비스를 떠올렸다. 식재료 배달서비스 ‘고블’의 태동이었다.


가그의 아이디어는 셰프들에게 직접 레시피를 받아 레시피에 나오는 모든 식재료와 소스까지 계량화해 배달해주는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구독)’ 서비스로 구체화됐다. 셰프들이 직접 시험단계를 거쳐 누가 해도 같은 맛이 나오도록 레시피를 정밀화한 것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이는 주문받은 음식이나 냉동 즉석조리 음식을 배달하던 기존 서비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1개의 팬에서, 3단계 이내의 레시피만으로, 10분이내 완성’=고블 이용방법은 간단하다. 고객은 사이트에서 요리사가 올린 샘플 사진과 성분, 재료를 보고 ‘주문 카드’를 작성한다. 주문이 완료된 요리의 식재료는 화, 수, 금요일 중 고객이 선택한 요일 저녁시간대(오후 5시30분~7시)에 배달된다. 일주일에 6끼 이상을 주문하면 한 끼당 11.95달러(1만3000원), 4끼를 주문하면 한끼당 13.95달러(1만5000원)다. 평균 한 끼당 12달러(1만4000원) 선이다. 

고블 8월 넷째주 메뉴[출처=고블 홈페이지 캡쳐]

이 뿐 아니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성분과 재료를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예컨대 고객들은 기호와 취향에 따라 “락토오스(젖당)는 넣지 말라, 갑각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므로 피해달라”는 등의 개별요구를 할 수 있다. 물론 식재료는 현지에서 공수한, 셰프의 테스트를 통과한 신선한 것만을 취급한다.

수요층을 확실하게 한 것도 고블의 성공비결이다. 고블의 주 고객은 대단한 미식가가 아니다. 맞벌이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가족들이 주고객이다. 퇴근 후 다시 시작되는 메뉴선택이나 조리 스트레스를 덜어주고자 하는 것이다. 대학시절 가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고민과 철학이 돋보이는 설계다.
 
고블의 모든 메뉴는 3단계 이내로 조리할 수 있는 간편함이 특징이다

고블 사이트에는 매주 다양한 메뉴들이 업데이트된다. 모두 3단계의 레시피로, 10분 이내에, 1개의 팬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이다. 그러나 레시피가 간단하다고 해서 ‘그냥’ 만드는 음식은 절대 아니다. 화이트와인과 마늘버터에 새우를 볶는 요리, 향신료에 절인 치킨 카츠와 파인애플볶음밥 등 ‘고품질’ 음식이다. 요리 하나에 포함되는 식재료만 10개가 넘고, 소스 하나에 5개 이상의 재료가 들어간다. 냉동이나 반조리된 식품을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고객에게 ‘요리하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학생들을 로스쿨, 지역, 나아가 국가까지 연계시켜 매칭하는 아나파타의 서비스.

▶22세 여대생의 창업 도전기=가그가 창업한 회사는 ‘고블’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미 스탠포드대 생물산업기계공학과를 입학한 가그는 2008년 첫 스타트업 ‘아나파타(Anapata)’를 창업했다. 스와힐리어로 ‘달성’을 뜻하는 아나파타는 법조계 기업과 학생들을 연결시켜주는 ‘직업 매칭 서비스’다.

가그가 아나파타를 창업한 이유는 단순했다. 학생들이 기업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고 자신들의 적성과 흥미를 살려 취업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꿈이 소박했던 만큼 첫 사무실도 그녀의 기숙사 방이었다.

회사는 초반 뜻밖의 투자로 승승장구하며 성장했다. 아나파타 창업 3주째 되던 날, 가그는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아나파타 창업 아이디어에 1만달러(1120만원)를 투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가그는 2010년 돌연 아나파타를 ‘로웩스(LawWerx)’ 법률사무소에 매각했다. 가그는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매출이 오를수록 마음 한 켠에 아쉬움과 허전함이 있었다”며 “아나파타가 법률계 회사의 ‘홍보용 수단’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 순간 더 이상 회사를 경영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첫 스타트업인 아나파타는 어디에서도 얻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라며 “아웃소싱, 사업설계를 비롯해 인력을 고용하고 소비자의 요구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법 등 기본적인 사업방식을 몸소 익혔다”고 말했다.

가그의 창업 노하우는 ‘고블’에서 빛을 발했다. 하지만 고블은 초반 자리를 잡기까지 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남성 경영자가 넘쳐나는 미국 식재료 배달 서비스 시장에 20대 초반, 그것도 비주류 남부 아시아계 여성이 뛰어드는 일 자체가 도전이었다. 그녀는 ‘어린 여자’라는 편견으로 성적 차별을 받기도 했고, 개발자가 사이트 오픈 직전에 그만두는 가하면, 자금조달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오시마 가그


그러나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가그는 직접 투자자를 찾아 나섰다. 미국 내 투자자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벤처 캐피탈에 고블을 소개했다.

결국 그는 2011년 세계 최대 비즈니스 전문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링크드인(LinkdIn)’의 CEO 리드 호프먼으로부터 120만달러(13억4000만원)의 자금조달을 성사시켰다. 또 2015년 10월에는 실리콘밸리 거물 안드레센 호로위츠와 벤처 캐피탈 기업 ‘트리니티 벤처스(Trinity Ventures)’ 등으로부터 총 1080만 달러(120억 원)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고블에 투자한 벤처캐피탈기업과 투자가 리스트만 20개가 넘는다.

▶“작은 것부터”=가그는 고블의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녀는 성장하고 있는 고블의 양쪽 어깨에 날개를 달아줄 야심찬 포부를 세우고 있다. 가그는 포브스 팟캐스트 매체인 ‘Million$’을 통해 “앞으로도 사용자에게 알맞은 가격의 고품질의 식재료 요리 키트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투자금은 식자재 포장을 돕는 ‘키친 오라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와 향후 미국 전 지역으로의 서비스 확대를 위한 판매 예측 알고리즘 고도화에 사용될 것”이라며 “지금의 시스템을 더 발전시켜서 샌프란시스코, 뉴욕, 로스엔젤레스, 시카고, 워싱턴 등지로 시장을 넓힐 예정”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창업에 대해 “‘작은 기숙사 방’에서 시작했던, 바쁜 대학생들이 한 끼라도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기를 바랐던 작은 바람” 같은 것이라며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yoon@heraldcorp.com
그래픽. 이해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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