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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김영원 숙명여대 통계학과 교수] 수돗물 ‘음용률 5%’의 함정
뉴스종합| 2017-01-12 11:23
‘우리나라 사람은 5%만 수돗물을 그대로 마신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수돗물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을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숫자이다. 이 5%라는 값이 안전하고 깨끗한 수돗물을 생산ㆍ공급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정부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는 한다.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데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도관 및 저수조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것으로 조사돼왔고 이런 이유로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노후 수도관 교체, 홍보강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사람들의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바꾸는 일은 좀처럼 없어 보인다. 이런 현상에 대해 통계학자로서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해 보려 한다. 혹 우리가 ‘수돗물 음용률 5%’의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닐지?

우선 살펴봐야 할 것이 5% 음용률을 이야기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수치, 바로 다른 국가의 수돗물 음용률이다. 선진국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프랑스는 60%가 넘는다’, ‘영국은 70%에 육박한다’ 등을 내세워 한국의 수돗물 음용률이 낮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설문의 문항 구성이나 조사 방식이 다른 경우가 많다. 일례로 영국의 경우는 한국과 달리 수돗물로 커피나 차를 타서 마시는 것까지도 음용률에 포함시킨다. 통계를 이용할 때 해당하는 통계가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떻게 작성된 것인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또 하나는 ‘음용률’이라는 단어가 주는 모호함이다. 이 단어는 마치 수돗물을 ‘수도꼭지에서 받아 그대로’ 마시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넓게 보면 수돗물을 끓여 마시는 것, 차를 넣어 먹는 것 또한 수돗물 음용으로 볼 수 있다. 또 개인의 기호에 따라 물을 마시는 방법 및 재화에 대한 선택이 다양한 지금의 라이프스타일로 사람들의 음용형태를 구분하고 관련 통계를 작성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명확한 통계 작성을 위해서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수돗물 먹는 비율’, ‘수돗물 마시는 비율’ 등으로 바꿔서 사용하는 것이 옳다.

결론적으로 1990년대부터 사용했던 수돗물 음용률 지표는 현재의 수돗물에 대한 인식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수돗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확대 재생산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이에 통계조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한국조사연구학회에서는 기존의 수돗물 만족도조사를 개선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올해에는 ‘먹는 물 실태조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수돗물 관련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새로운 조사결과가 나오면 예전과 단순 비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혼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와 수도사업자가 사용실태를 제대로 반영한 올바른 상수도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필요한 통계 개선 작업을 차일피일 미룰 수만은 없는 일이기도 하다. 새로 진행되는 ‘수돗물 먹는 실태조사(가칭)’가 대한민국 상수도정책의 명확한 방향성과 개선방안을 도출하는 나침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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