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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이 태양을 피하는 방법
뉴스종합| 2017-01-16 09:02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수십년간 한국 정치사를 뒤흔든 대형 스캔들의 주역이었지만, 매번 비슷한 방식으로 위기를 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의 본질을 해명하기보다는 사건이 드러난 방법과 절차에 법적 이의를 제기해 돌파구를 마련한 것.

김기춘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지난 14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과거 전력이 일목요연하게 나열됐다.

김 전 실장은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살사건, 1975년 11.22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1992년 부산 초원복집 사건, 2014년 정윤회 문건 파문, 2016년 최순실 등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 등의 중심에 있었다.

김 전 실장은 1974년 육여사 피살 사건의 범인 문세광의 입을 열게 한 공로 등을 인정받아 초고속 승진했다.

1975년에는 일명 11.22 사건으로 불린 재일동포 유학생 학원침투 간첩사건을 주도해 당시 정부 비판 세력을 진압했다.

당시 검거된 21명의 재일동포 유학생들은 모진 고문과 폭행 끝에 짜놓은 각본대로 허위 자백한 뒤 결국 사형 선고까지 받았지만, 결국 재심 끝에 수십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김 전 실장의 수사가 대부분 조작이었음이 드러난 것.

재심 변호를 맡은 장경욱 변호사는 “간첩이 득실되는 한국을 만들어 결국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고 한 세력이 있는거다. 누구나 간첩의 희생양이 될 수 있었던 시대다”고 지적했다.

김기춘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당시 사건 수사를 주도했던 김기춘 전 실장은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김 전 실장이 법무부 장관이던 1991년에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시위하던 한 대학생이 경찰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자 전국 곳곳에서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그런데 한 청년이 동료의 자살을 부추기며 유서를 대필해줬다는 이른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이 터졌다. 결국 학생들의 부도덕성이 여론의 질타를 받으며 분위기는 반전됐다.

1991년 당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회장 김종식씨는 “정권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는 조작된, 그것도 국가적 차원에서 엄청난 범죄 행위가 저질러젔다. 총 지휘를 누가 했느냐. 김기춘이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기훈씨는 24년 만인 지난 2015년 무죄로 결론났다.

1992년 부산 초원복집 사건에서는 김 전 실장이 김영환 부산시장, 박일용 부산경찰청장, 이규삼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직할시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장 등 지역 정관계인사들이 총집결한 가운데 김 전 실장이 지역 감정을 조장하려 한 발언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오히려 불법도청을 문제삼아 빠져나갔고, 문제를 제기한 측 인사들이 구속됐다.

2014년 발생한 정윤회 문건 파문 역시 문건은 ‘찌라시’로 격하한 뒤 당시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구속됐다.

김 전 실장은 지난해 JTBC에 폭로된 최순실 등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태 역시 본질보다는 이 사태 폭로의 결정적 계기가 됐던 태블릿PC를 문제삼는 방식으로 옛 ‘수법’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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