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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헬조선’아닌‘헤븐조선’돼야죠”
뉴스종합| 2017-01-25 11:08
우연히 접한 장애소녀의 죽음
약자 인권운동 헌신 마음먹어
장애우시설 그룹홈 14곳 운영
“한국인들엔 공동체 삶이 필요”


광주 엠마우스 복지관의 천노엘(본명 오닐 패트릭 노엘ㆍ85·사진) 신부에게 한국에서 보낸 60년은 장애인을 위해 헌신한 삶의 기간이다. 무려 60년을 이역만리 한국에서 보낸 만큼 그가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국인보다 더 예리하다. 한국말도 유창하다. 천노엘 신부는 설을 앞두고 “시대가 어려울수록 주위 이웃에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쏟는 ‘공동체 의식’이 한국인에게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는 “올해만큼은 한국이 ‘헬조선’이 아닌 ‘헤븐조선’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정치권과 종교 지도자들이 노력하는 동시에 시민들도 개인주의를 버리고 사회적 약자를 챙겨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리’라는 소속감을 느껴야 위로와 힘을 얻는다”고 덧붙였다.


1957년 선교사로 한국 땅을 밟은 이후 장애인 인권 향상에 헌신해온 그는 지난해 설을 앞두고 법무부로부터 특별공로자로 인정받아 특별귀화 허가를 받았다. 귀화 1년을 앞둔 올해는 그가 한국에 정착한 지 60년째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가 약 반세기만에 이렇게 성장한 것은 놀랍다”고 평가했지만 “여전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많이 부족하다. 장애인을 위해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사목활동을 하다 우연히 접한 장애인 소녀의 죽음이 그를 장애인 인권 활동으로 이끌었다.

발달장애를 겪던 요아(당시 19세)가 급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을때 병원 측은 장례비를 부담하는 대신 시신을 해부용으로 기증해 달라 제안했다. 천 신부는 “살아있는 동안 인간다운 대우를 못 받았는데 죽어서라도 대우를 해줘야 하지 않겠냐”며 이를 거절했다. 한 천주교회 묘지에 요아를 묻은 그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비석에 한마디를 새겼다. “우리 사회를 용서해주시겠습니까?”

그날 이후 천 신부는 명절마다 요아가 묻힌 묘지를 찾아 직접 벌초를 한다. 그는 이번 설에도 과일을 들고 요아를 찾을 계획이다.

1981년 국내 처음으로 ‘그룹홈’ 제도를 도입하며 그는 장애인 인권 활동에 앞장섰다. 그룹홈이란 장애인의 사회 적응을 위해 장애인과 봉사자가 함께 생활하는 소규모 가족형 거주 시설이다. 1993년 엠마우스 복지관을 아우르는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를 설립한 그는 현재 총 14개의 그룹홈를 운영하고 있다.

천 신부는 “진정으로 인간다운 대우를 해주기 위해서는 작은 복지부터 시작해야한다”고 강조하며 “1000~3000명까지 수용하는 한국형 대규모 장애인 시설은 인권 보호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곧 “한국 정치인들의 가치관을 반영한다”며 “하루 빨리 대규모 장애인 시설에 수용돼 있는 이들을 지역사회에 흡수시켜야 한다”고 했다.

천 신부는 우리나라의 공동체 문화가 많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한국의 예전의 공동체 문화를 유지하고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주위 이웃을 챙기며 서로 정신적인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현정 기자/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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