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옥島 그곳…日, 미화만 남기고 ‘강제징용’은 지웠다
뉴스종합| 2017-02-28 11:41
한국인 징용자 피눈물 서린 곳
日 반성없이 세계유산 광고만
“외국인 노동자도 행복” 왜곡

“하시마섬(군함도)에는 일본 최초로 지난 1916년에 7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당시 도쿄에도 없었던 시설입니다. 하시마섬의 최신 시설은 고생하는 광부들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외국에서 돈을 벌고자 찾아온 광부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일본 규슈 나가사키만 앞바다에 있는 하시마섬. 일명 ‘군함도’로 불리는 이 섬은 한국인들이 강제징용돼 죽음의 공포 속에 혹사당했던 곳으로 잘 알려졌다. 3ㆍ1절을 보름 앞둔 지난 14일 찾아간 섬은 나가사키 항구에서 쾌속선으로 40여분이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60명이 정원인 쾌속선은 평일에도 만석이었고 10여명의 외국인 관광객도 눈에 띄었다.

섬으로 가는 배 안에는 지난 2015년 ‘규슈ㆍ야마구치 근대화산업유산군’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하시마섬의 광고 영상이 상영됐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전담 가이드가 따로 배정돼 영어로 설명을 이어갔다. 짧은 영상이 끝나자 이번에는 가이드가 설명을 시작했다.

오후 1시 30분께 항구를 떠난 배는 거친 파도 때문에 오후 2시 30분에야 하시마섬 선착장에 도착했다. 이날 가이드를 맡은 하마구치 츠요시 씨는 “삼촌도 50년대 군함도에서 광부로 일하셨지만, 이 섬은 지금의 일본을 있게 한 고마운 섬”이라며 “세계에서도 일본 근대화 유산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배 안에도 “일본 산업화의 프라이드”이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가득했다.

섬 남단에 마련된 선착장은 곧장 좁은 콘크리트 문이 나왔다. 강제징용자들이 ‘지옥문’이라고 불렀던 둘레 1200m짜리 작은 섬의 유일한 통로였다. 지옥문을 빠져나오자 하마구치 씨는 제일 먼저 갱도로 들어가는 입구를 소개했다. 지금은 회색빛 콘크리트 뼈대만 남았지만, 가이드는 예전 사진을 꺼내 보이며 목욕탕이 있던 자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외국인 광부들도 일본인 광부와 똑같은 탕을 썼다”며 “섬 내부에 영창이 있지만, 섬사람 모두가 한가족이라는 생각에 실제 운영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파도가 들이치는 저층에서 살며 혹독한 노동과 학대를 견뎌야 했다는 강제징용 생환자들의 증언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난해 6월 30일로 활동을 종료한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하시마섬에만 800여명의 조선인이 끌려왔으며, 강제노동을 하다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사람만 122명에 달한다. 강제징용에 대해 묻자 가이드는 정색을 하며 “1800년대부터 섬이 폐쇄됐던 1974년까지 공식 사망자는 200여명 뿐”이라며 “외국인들도 섬 안에서 일본인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까지도 섬에 남아있는 강제징용자 위령비 접근은 금지됐다. 세계문화유산 등록 당시 약속했던 강제징용 안내센터도 없었다. 해방 후 징용자를 실은 배를 고의로 침몰시켰다는 증언에 대해서도 그는 “석탄을 실은 배가 미군 어뢰에 맞아 침몰한 사례만 보고됐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대해서도 일본의 왜곡은 계속됐다. 실제 유네스코에서 유산군으로 지정한 부분은 메이지 시대에 지어졌다고 하는 흙 제방뿐이다. 나머지 건물과 시설은 이후에 지어졌기 때문에 실제로는 유산군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이드는 외국인들에게 마치 섬 전체가 지정된 것처럼 소개했다. 그는 “근대화의 유산 모두가 세계로부터 인정받았다”며 유네스코 마크를 가리켰고, 투어 막바지에도 “메이지유신 때부터 각종 편의시설이 있어 섬사람들의 여가는 오히려 도쿄보다 나았다”며 “유네스코도 일본 산업화의 신화를 인정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40여분간의 짧은 상륙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당시 탄광에서 일했던 일본인들의 인터뷰 영상이 나왔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한국인 강제징용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강제동원 조사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 징용자 상당수가 가혹한 학대 속에 숨졌고, 1944년부터 해방까지 확인된 사망률만 13.9%에 달했다. 일본인 사망률(5.5%)의 두 배를 넘는 수치다.

이날 군함도를 방문한 다른 한국인 관광객들도 일본 측의 왜곡에 어이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관광객 이기우(27) 씨는 “한국어, 영어 팜플렛 어디에도 외국인 징용자에 대한 설명은 없었고, 섬에 대한 찬양만 가득했다”며 “세계문화유산도 좋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가사키=유오상 기자/osyoo@heraldcorp.com
랭킹뉴스